수원교구 성당 순례

[수원교구 성당 순례] 안성성당

박효주
입력일 2025-05-27 17:50:06 수정일 2025-05-28 10:23:17 발행일 2025-06-01 제 3444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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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역사 간직한 뾰족 첨탑·한옥 기와 어우러진 거룩한 공간
1901년 건립해 1922년 재건한 형태 현존…국내 유일 상량식 중층 교회 건축물

수원교구 제1대리구 안성성당(주임 박우성 암브로시오 신부)은 크게 두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다. 1901년 건립된 본성당(이하 성당)과 1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착한 의견의 모친’ 기념 성당이다. 이외에도 100주년 기념관 등이 한 곳에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거룩한 공간은 여느 성지 못지않은 너른 묵상 장소를 선사한다. 이 중에서 특히 많은 순례자가 찾는 성당의 모습과 역사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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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정면은 붉은 벽돌에 뾰족한 첨탑으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지만, 측면에서는 기와지붕을 품은 한옥의 모습이 보인다.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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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 주조된 성모 동산의 성모상. 박효주 기자

늠름한 명마 같은 외관

성당은 정면에서 보면 붉은 벽돌 건물에 뾰족한 첨탑 세 개가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그러나 조금만 각도를 틀어도 반전이 나온다. 나무 기둥 사이 돌벽과 회벽 위로 기와지붕이 얹힌 한옥이 드러나는 것이다. 건물은 마치 적토마와 백마가 반씩 섞인 멋진 명마 한 필이 주변 소나무 사이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 같아 보인다. 

프와넬 신부(1855~1925)가 설계한 이 성당은 1922년 재건된 것이다. 이례적으로 초기 바실리카식 공간 구성의 한옥 성당으로, 동서 융합의 탁월한 사례다. 때문에 1985년 경기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됐다. 성당 부지는 약 264㎡(80여 평)이며 건축 재료들은 1786년 안성군 보개면 동안리에 지어진 기와집인 누각식 동안강당(東安講堂)의 기와, 목재, 기둥 16개 그리고 석재를 일부 사용했고 다른 주요 목재들은 압록강에서 가져왔다.

오후 12시가 되자 묵직한 종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흘러나오는 종탑부는 1955년 고딕 양식의 벽돌조로 증축된 것이다. 성당 주변 보도를 따라 놓인 십자가의 길도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모양이다. 각 처마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품에 안고 있는 형식으로 조각돼있다. 눈코입도 없이 단순하게 빚어진 성모상은 성당 계단 아래 자리한 성모 동산의 다소 근엄한 성모상과 대조된다. 양팔을 벌리고 있어 얼핏 보면 예수상으로 착각하기 쉬운 성모 동산 성모상은 약 100년 전 주조됐기에, 마리아 신심에 대한 오해 야기를 주의하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의 헌장에 다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안내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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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은 국내 유일의 상량식 중층 교회 건축물로서 내부에는 높은 천장과 목재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박효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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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성가대석 쪽 스테인드글라스는 밝은 원색 위주의 단순화한 성화들이 채워졌다. 박효주 기자

목재가 살아 숨 쉬는 단아한 내부

아치형 입구를 지나 신발을 벗고 나무 마루인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그대로 드러난 목재 기둥과 대들보가 보인다. 시원하게 높은 천장에 국내 유일의 상량식 중층 교회 건축물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이로 인해 햇볕이 환히 들고 바람이 잘 통한다.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서양식 건축 부분인 성가대석 양옆과 뒤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돼있다. 단순화한 성화를 밝은 원색 위주로 채워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순수함이 느껴진다. 반면 신자석과 제대가 있는 한옥 부분으로 난 창문은 나무 틀의 투명한 창이라 바깥의 녹음이 비쳐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와가 덮인 처마가 창문 위아래로 엿보여 풍경에 한국적 미를 더한다.

창 쪽으로는 난간이 있는 나무 복도가 나 있다. 이를 따라 제단 앞까지 가면 제단화와 나무 제단 등을 보다 자세히 볼 수 있다. 짜임새 있는 나무 제단과 제대는 1925년 덕원수사원 목공부 출신 원재덕 목수가 제작했다. 이에 어우러져 있는 착한 의견의 성모 등 상본 다섯 점은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이다. 제대 밑 가운데에는 본당 초대 주임인 하느님의 종 앙투안 공베르 신부(1875~1950) 초상화가 놓여 있다.

공베르 신부, 6·25로 슬픈 금경축

이 성당을 세운 공베르 신부는 미사주를 만들기 위해 안성 포도의 시초인 포도 묘목을 들여왔고, 민족의 교육을 위해 안법고등학교를 설립했다. 3·1운동 가담자들을 성당으로 피신시키고, 성당이 치외법권 지역임을 들어 이들을 보호했다.

1950년 6월 25일에는 전날 사제 서품 50주년을 맞은 공베르 신부의 금경축 행사가 있었다. 당시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지도신부로 있던 공베르 신부는 축하연이 끝날 즈음 전쟁 소식을 접했다. 신부는 피난 권유에도 수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원에 남았다가 7월 15일 결국 체포되고 며칠 후 평양으로 이송됐다. 그 뒤 고산진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중강진으로 향하는 ‘죽음의 행진’으로 쇠약해진 공베르 신부는 결국 75세를 일기로 중강진에서 병사했다.

박우성 신부는 “2024년 공베르 신부님의 후손이 본당에 방문해 유전자 정보를 문서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며 “앞으로 북한 측과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가 진행돼 중강진에 묻혀계신 신부님의 유해도 확인하고 신부님의 시복시성 길이 열리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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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밑 가운데 놓여 있는 본당 초대 주임 ‘하느님의 종’ 앙투안 공베르 신부 초상화. 박효주 기자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