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 세기 의료복지·인권 향상 위해 쉼없이 달려오다

박효주
입력일 2024-10-20 수정일 2024-10-24 발행일 2024-10-27 제 341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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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놀 수녀회 한국 진출 100주년 맞아 10월 18일 기념미사 봉헌…"다가올 100년도 다함께"

메리놀 수녀회(한국공동체 대표 성미영 안젤라 수녀)가 10월 21일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았다. 1924년 서울에 도착한 6명의 수녀로 시작된 메리놀 수녀회 한국공동체는 지난 100년간 우리 역사의 질곡 속에서 의료 사업, 빈민 구제, 학교 설립, 인권·생태 환경·여성 운동 등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며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데 앞장섰다. 메리놀 수녀회의 대표적인 발자취와 10월 18일 거행된 100주년 축하식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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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한국에 파견된 6명의 메리놀 수녀회 수도자. 메리놀 수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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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1941년 의주에서 활동하던 중 얼어붙은 강을 배를 타고 건너서 가정방문을 하고 있는 메리놀 수녀회 수도자들. 메리놀 수녀회 제공

의료 지원 사업에 헌신

메리놀 수녀회는 1926년 평양교구 의주와 영유, 1928년 비현의 의료원 개설을 시작으로 수많은 의료 지원 사업을 시행해 우리나라의 의료 복지에 이바지했다.

특히 1950년 4월 15일 부산에 도시 최초 가톨릭 의료기관인 메리놀병원을 설립했다. 개원 직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피난민 중심으로 구호와 약품 지급, 무료 진찰과 치료를 제공했다. 수녀들은 고아원과 빈민가 방문 진료도 실시했다. 1951년 8월경에는 병원에 매일 찾아오는 환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주민들이 과로로 인한 질병을 많이 앓고 있던 청주교구 충북 증평에는 1956년 12월 증평병원을 세웠다. 농업 종사자가 많았던 터라 봄·가을에는 농부들이 뱀에 많이 물려 미국에서 가져온 해독제로 연 300여 명을 치료하기도 했다.

패트리시아 콘로이(Patricia Anne Conroy) 수녀는 부산가톨릭대학교의 태동이 된 메리놀병원 부속 간호학교를 1964년 3월 설립했다. 병원을 운영하며 잘 훈련된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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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놀 수녀회가 1974년~1985년 활동했던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우를 진료하고 있는 앨리스 수녀(왼쪽). 메리놀 수녀회 제공

아울러 메리놀 수녀회는 여러 섬에서 의료 지원 사업을 펼쳤다. 1963년부터 1976년까지 인천 강화도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그리스도왕병원을 개설해 운영했으며 공공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주변 섬에도 방문해 예방 건강교육을 제공했다. 1969년부터 1974년까지는 인천 백령도의 진료소에서 특히 결핵 환자 치료에 힘썼다. 1974년에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의 초청으로 소록도에 파견돼 1985년까지 의료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1989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영등포 요셉의원에서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소임하며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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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1999년 문애현 수녀(왼쪽에서 두 번째)가 운영한 성매매 피해 여성 쉼터 ‘막달레나의 집’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오른쪽에서 두 번째). 메리놀 수녀회 제공

여성 인권 신장에 기여

메리놀 수녀회는 여성 쉼터와 이주민 센터 설립, 여성 수도회 설립 지원 등을 통해 당시 열악했던 여성의 인권과 복지 증진, 자립을 도왔다.

문애현 수녀(요안나·Jean Maloney)는 1985년 7월 이옥정(콘세트라타) 씨와 함께 서울 용산에 성매매 여성과 학대 여성을 위한 쉼터 ‘막달레나의 집’을 마련해 1999년까지 운영했다.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던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보금자리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었다. 막달레나의 집은 그들에 대한 상담과 기술 교육 등을 지원해 2017년 문을 닫을 때까지 수백 명의 여성에게 도움을 줬다.

1953년에는 6·25전쟁으로 인해 늘어난 과부들에게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경제적 자립을 지원했는데 이를 발단으로 1960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이 설립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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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놀 수녀회가 2004년~2007년 설립 후 운영한 미리암이주여성센터에서 열린 한국어학교 생일잔치. 메리놀 수녀회 제공

2000년대 접어들며 한국 남성과 결혼한 아시아 여성들이 늘어나 여러 도움이 필요했다. 이주 여성들은 언어와 문화, 경제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가정 폭력과 이혼 등의 문제도 대두됐다. 이들을 돕기 위해 노은혜(Patricia Norton) 수녀와 노리(Norie Mojado) 수녀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미리암이주여성센터를 운영하며 센터의 초석을 다졌다.

1930년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수녀회 설립을 도왔다. 메리놀 수녀회 본회의 첫 한국인 입회자였던 장정온(아네타) 수녀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1935년 다시 본국으로 돌아왔고 1950년 공산당에게 납북될 때까지 수련장과 원장 등으로 헌신했다.

또한 메리놀 수녀회는 가부장제가 심했던 1920년대 가내수공업 학교인 영유산업학교를 통해 10대 소녀들에게 일반 학교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직업 교육을 실시해 여성 교육과 산업기술학교의 효시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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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메리놀 수녀회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식에서 메리놀 수녀회 관계자들이 축하 케이크 촛불을 끄고 있다. 박효주 기자

◆ 메리놀 수녀회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행사

“지나온 100년을 여러분이 저희와 함께해 주셨던 것처럼 앞으로의 100년도 함께 지켜봐 주시고 걸어가 주십시오.”

10월 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메리놀 수녀회 한국 진출 100주년 기념미사와 축하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메리놀 수녀회 한국공동체 대표 성미영(안젤라) 수녀는 메리놀 수녀회를 지지해 주는 평신도들이 오늘의 주인공임을 강조했다.

기념미사는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한국지부장 안구열 신부(아우구스티노·Richard Agustin)가 축하객 20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주례했다. 성찬 전례 시간에는 지구본과 문애현(요안나) 수녀의 일기, 메리놀 수녀회 창립자 마더 메리 조셉 수녀(Mary Joseph Rogers)의 사진, 장정온(아네타) 수녀의 사진이 봉헌됐다.

강론을 맡은 메리놀 수녀회 총원장 테레사 허니언(Teresa Hougnon) 수녀는 “한 세기 동안 126명의 메리놀 수녀가 한국 선교에 참여했다”며 “앞으로도 우리는 지역민들과 함께 모든 창조물을 위한 평화와 포용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축하식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자들은 설립 당시를 재현한 단막극과 노래 <Here I am, Lord>(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를 선물했으며, 행사 후에는 식사와 함께 케이크 커팅식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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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메리놀 수녀회 한국 진출 100주년 축하식에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도자들이 ‘Here I am Lord(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를 부르고 있다. 박효주 기자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