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시노달리타스’에 담긴 뜻은? / 박지순 기자

박지순
입력일 2024-03-19 수정일 2024-03-20 발행일 2024-03-24 제 3385호 2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올해 10월 본회의 제2회기가 열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전국 각 교구 담당 사제들을 취재하면서 한국교회와 세계주교시노드는 거리가 꽤 멀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시노드 담당 사제들도 세계주교시노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취재에 응한 시노드 담당 사제들은 각자 한국교회에서 왜 시노달리타스가 낯설게 여겨지는지 나름대로 원인을 들려줬다. 무엇보다 다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 원어가 신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리고 왜 우리말 번역어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지만, 시노달리타스는 없던 말이 아니라 가톨릭교회 전통에서 오랜 세월 사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부산교구 시노드 담당 노우재(미카엘) 신부는 시노달리타스를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야 할 여정’, 달리 말해 ‘교회 공동체 자체’라고 정의했다. 춘천교구 시노드 담당 김도형(스테파노) 신부 역시 시노달리타스가 지향하는 교회의 원형은 사도행전에 그려진 초대교회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에서 시노달리타스가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은 곧, 함께 걷는 교회나 초대교회로부터 그만큼 멀어졌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노우재 신부가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방해하는 핵심 원인을 ‘교회의 세속성’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 여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15일 교황청 복음화부 정기총회에 참석해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최대 위기를 ‘세속화’라고 지적하면서 “가정과 공동체에서 극복의 길을 찾자”고 말한 것도 기자에게는 시노달리타스의 길을 걷자는 의미로 들렸다.

시노달리타스는 그 안에 담긴 본래 의미를 아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Second alt text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