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선교지 / 박천조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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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코로나19 대응지침이 조금씩 완화됨과 동시에 가을에 접어들어서인지 연수나 교육을 받을 기회들이 자주 생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교리봉사자 연수가 있어 좋은 강의를 듣고 올 수 있었습니다. 강의 후에는 의정부교구장 이기헌(베드로) 주교님께서 미사를 집전해 주셨는데 강론 말씀을 통해 제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습니다.

강론 요지는 일본에 계실 때 만나 뵈었던 사할린 교포에 대한 첫 기억과 교리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뵈었던 그 교포는 만남 이후 담소를 나누던 중 저녁이 되자 옷을 단정히 입고 ‘만과’(저녁기도)를 드릴 준비를 하셨다고 합니다. 주교님께서 그분께 언제부터 ‘만과’를 드리셨냐고 물어 보니 해방 전 전교회장으로부터 교리를 배우면서 알게 됐고 이후 사할린으로 넘어와서도 계속 드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교님은 지금까지도 이분과 계속 교류를 하고 있고 그 교포가 국내에 정착한 이후에도 중요한 일정마다 연락을 주고받으신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주교님은 강론 중간에 만과를 드리셨던 그분을 설명하며 “아마 북쪽에도 여전히 이런 신자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그래, 북쪽에도 해방을 전후해 교리를 익히셨던 분들 중에 지금도 혼자서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분들이 계시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기억을 못하겠지만 해방 직후 북쪽에는 57개 본당에 5만5000여 명의 신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수가 6·25 전쟁의 와중에 남쪽으로 내려오셨지만 여전히 우리 신앙을 지키는 분들이 그곳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매일 저녁 9시에 바치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주모경은 북쪽에 계신 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북쪽은 제 마음속에서 ‘남북의 미래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부터 ‘선교지로서의 공간’으로도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여타의 국가들이 ‘선교지’이듯이 북쪽도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북쪽에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해볼 수 있는 역할, 즉 제대로 된 현실을 알리고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들을 먼저 해보자고 다짐해 봅니다. 마침 가을을 맞아 민족화해와 관련된 영화상영을 준비하자는 본당 민족화해분과원들과의 논의가 있었습니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자그마한 실천과정을 통해 우리는 점점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박천조 그레고리오(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