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곧 국가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선언을 한 국왕이 있었다. 군주의 절대권과 칼날 같이 푸르르고 창 끝 같이 날카로운 위세를 느끼게 하는 말이다.「태양왕」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루이 14세는 이러한 선언에 어울리게 유럽 제일의 강국으로 프랑스를 융성케 하였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도 여러 번 일으켰고 호화의 극을 다한「베르사이유」궁을 창건하였으며 사랑하는 총회에겐 수백 개의 보석으로 수놓은 옷을 지어 입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권세가 끝나고 생명이 다하여 한낱 백골진토로 묻혀 있는 오늘, 그의『짐은 곧 국가이다』라는 말은 박물관 소장품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봉건군주제의 유물에 불과하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않으리라』
이것은 유태나라 한 작은 마을의 목수의 아들이 부르짖은 말이다. 그는 땅 위에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권력도, 부귀도, 명예도, 그와는 먼 거리에 있었으며 마침내는 생명조차도 남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 사상 일찌기 이보다 더 자신 있는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이 말은 봉분 속에 묻혀 썩지도 않았고 역사책에 기록되거나 박물관 진열장에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가슴 속에 생생히 살아 반짝이고 있다. 이 점이 앞서 루이 14세식 선언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에 서는 점이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것은 그 속에 어떠한 위협,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신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목수의 아들에게 이런 신념을 불어넣어 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사랑」이라는 온전한 진선미의 바탕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총칼의 힘이 아닌 사랑의 힘이 그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 말이 독설이나 허황된 말이 아닌 자신과 신념자의말로서 생명력을 지니는 것이다.
예수는 언제나 병들고 불쌍한 사람의 친구였다. 저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며 도우는 일이 그 생애의 태반의 행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그의 사랑의 가르침을 실증케 되지만 그가 얼마나 사람들을 사랑하였으며 도탄에 허덕이는 인간의 삶을 안타까와 하였던가는 그의 기도의 말 속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네 거룩한 뜻이 하늘에서 이룸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이것이 바로 그 대목이다. 인간 예수의 고민과 끝없는 연민에의 정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오늘 우리는 이 기도문을 외우며 눈에는 눈으로 이빨엔 이빨로 맞서는 증오와 원망의 인간관계가 해소되기를 그래서 복락을 누리는 인간 사회가 이룩되기를 간절히 염원함과 동시에 인자 예수의 자비의 빛을 또 한 번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