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에필로그 / 박복주 (끝)

박복주(수녀ㆍ계성여고 교장)
입력일 2020-06-12 11:47:19 수정일 2020-06-12 11:47:19 발행일 1973-01-01 제 847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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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늦가을의 맑은 햇빛이 길다랗게 나의 집무실에 석양의 여운을 드리우던 때부터 이렇게 원고지와 함께 생각하는 시간들을 가졌었는데 지금은 겨울도 깊어 스토오브의 빨간 불꽃이 활활 타고 있습니다. 저무는 한해의 마지막 장(章)에 아직도 못다한 얘기들은 숱하게 쌓여있지만 그것은 커다란 보람이면서 또한 고통이기도 했지요.

마음을 열어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용기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내가 적은 글이 활자로 되어 나올때마다 부족함을 훤히 들여다보고 정말 부끄럽기 한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많이 成長한 느낌입니다. 사람들과의「만남」에서「기다림」까지 항상 내가 생각하던 일들을 다시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며 부족함을 기워주는 많은 지도와 격려의 말씀들이 채찍이 되어 주셨습니다. 더구나 멀리 프랑스 서독 등지에서까지 문의와 격려의 말씀으로 지도해 주시는 서신이 날아올 때는 또 한번 움칫 자신을 도사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필치가 무디어서 크고 작은 실수를 많이 저질렀던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공동체 안에서 맡은바 임무에 충실하면서 결국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고 있게 된 모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이야기를 했었지만 우리는 끝내 자신의 구령을 위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꽃피우기 위해 지금 잠시동안 머물러 있을뿐입니다.

사회생활을 통해서 나 아닌 남(他人)과의 대면은 언제나 희생과 양보,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것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그 형상이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온후한 사람은 항상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기쁨을 맛볼것이며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탓하고 차가운 눈초리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가 마련한 삭막한 대지에 놓여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준다」「마음을 빼앗긴다」는 이야기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대상에 깊은 관심을 표하고 결국은 그것에 빠져들어가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겨우 40여년, 얼마 살아오지 않은 생활 속에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과 미움의 모습들을 보아왔는지 모릅니다. 그럴때마다 주님의 사랑의 미소를 보고, 듣고 깊이 감지하면서 더욱 그 안으로 마음을 온통 빼앗기면서 새롭게 나는 자신을 발견하고 소생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죄인으로만 머물러 있을수는 없는것이고, 우리의 인자하신 아버지는 그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십니다. 돌아온 탕아에게 사랑의 눈물과 기쁨의 포옹으로 반겨주시는 한없이 넓고 온화하고 성스럽고 평화로 가득 찬 아버지의 품이 있는 것입니다.

남의 용서로 스스로를 구제해 나아가는 현명한 죄인이 되어야 겠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살아갈때 곧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와있는 것이겠지요.

주여!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박복주(수녀ㆍ계성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