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가톨릭 대상 사랑ㆍ문화 부문 수상자 인터뷰

전정현 기자, 강신우 기자
입력일 2019-08-20 13:36:39 수정일 2019-08-20 13:36:39 발행일 1987-02-08 제 1542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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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산원 경영…무료시술 30년-사랑부문 주정숙씨

농아학교 등도 적극 돌봐

“충주지방 백의의 천사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사랑의 봉사자가 되기를 자청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온 주정숙 할머니(60ㆍ로사ㆍ충북 충주시 충의동 95~4 주정숙조산조).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이런 엄청난 상을 받게 되다니, 부끄럽기만 합니다』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할머니는 주름살이 곱게 패인 다정 다감한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 모습을 연상케 한다.

자상한 어머니로서 또한 아내로서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지만 남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할머니의 삶이 나눔과 봉사로 일관 되왔다는 점이다.

충주에서만 30년 동안 조산원을 경영하면서 가난으로 조산비 부담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돕는 일은 할머니의 드러난 선행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20년 전부터 충죽현 본당 빈첸시오 아바오로회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농아학교 후원, 청각 장애자 돌보기, 무의탁 노인돕기, 극빈 학생 장학금 지원 및 극빈자 무료 진료 알선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할머니의 활동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충주지방에서 오래전부터「백의의 천사」라고 불리우고 있을 뿐이다.

하나를 얻으면 둘로 쪼개어 이웃과 나누어 갖는 생활습관 때문에 남들 눈에는 크나큰 봉사로 보일지 모르나 할머니는 그러한 것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눔의 생활이 바로 할머니의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신자된 도리가 아닌지요. 남보다 조금 여유가 있다는 것 때문에 베푼다는 것이 선행이 될 수는 없다』고 잘라 말하는 할머니는 결코 가진 사람도 아니다.

서울대학 부속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하던 중 한 수녀님의 삶을 보고 입교를 결심, 그 후로 지금까지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다는 할머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믿음과 신뢰로 대한 다는 것을 생활의 좌우명으로 살고 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조용히 성모님께 묵주기도를 바친다는 할머니는 3년 연상인 부군 한용환씨와 함께 2남 3녀를 흘륭히 키운 자랑스러운 어머니이기도 하다.

1927년 충북에서 평범한 농가의 장녀로 태어난 할머니는 해방되던 해 청주 간호원 양성소를 졸업하고 도립병원과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육군간호장교로 6ㆍ25때 종군, 최전선 이동 병원에서 부상 군인들의 치료ㆍ수술ㆍ후송 등에 헌신했다. 55년 육군대위로 예편, 현재 충주에서 조산소를 운영하고 있다.

◆순교자들 유적발굴정리-문화부문 마백락씨

신나무골 성지개발에도 앞장

결핵ㆍ나환자에 대한 봉사도

순교선조들의 고귀한 넋을 발굴, 세상에 알림으로 써 그리스도를 증거한 마백락씨(49ㆍ끌레멘스ㆍ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동 513번지). 그에게 있어서는 교회사가 다운 근엄함 모습이라든가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백발이 희끗 서려있어 온화한 느낌을 준다.

제5회 가톨릭대상 문화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마백락씨는 『순교자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그분들의 신앙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은 신자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강조,『너무 과분한 상을 받아 송구스럽기도 하고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왜관 신동본당 전교회장으로서 경상도지방 교회사연구에 획기적인 업적을 세운 공로로 이번 상을 수상하게 된 마회장은 오로지 순교자들에 대한 존경과 행적을 밝히려는 집념 하나만으로 밤낮없이 노력했다.

마회장은 경상도 지방 순교자의 무덤 14기(基)를 발굴, 그 내력을 밝혔으며 옛날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살던 대밭과 옹기 가마골을 현재의 신나무골 성지로 개발하는 밑거름 역할을 했다.

또한 마회장은 대구대교구가 교구 차원서 대대적인 성지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한티의 순교자묘를 찾아 그 내력을 밝혔으며 1884년 신나무 골에 개설한 배론학당의 내력을 알아내는 등 어쩌면 우리 기억 속에서 영원히 묻혀 버릴뻔 했던 한국교회사의 자료들을 발굴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같은 업적을 쌓은 마회장이 교회사 연구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1961년 대구 칠곡본당 전교사로 부임하면서 부터이다.

전교활동을 하면서 자연 인근 신나무골과 한티의 순교자 얘기를 전해들은 마회장은『순교자의 묘가 내력도 모르는 채 방치되어 있을 때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면서『이때부터 무명 순교자의 행적을 발굴하는 것이 하느님이 저에게 주신 소명임을 어렴풋이 자각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한 마회장은 신동 및 신동고개 나환자들의 대부로 불릴 만큼 매주일 결핵 요양원, 음성 나환자촌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해결해나가는 봉사와 희생의 삶을 살고 있다.

이와 함께 마회장은 한티성지를 배경으로 한「성금요일 오후」, 나환자를 도우면서 체험한 것을 주제로 한 「가난한 사람들」, 결핵환자의 애환을 담은「사랑의 변화」등의 책을 저술,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사랑과 봉사의 값진 체험을 발표하기도 했다.

부인 신경흥(49ㆍ마리스텔라ㆍ대구 서부여중 교사) 여사와의 사이에 3남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전정현 기자, 강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