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주교회의 추계총회 내용 가운데 ‘성직자 납세’와 교회 사무전산화를 위한 ‘코드(Code)화’, ‘종교부지 확보 및 토초세’에 관한 것이 특히 눈길을 끈다.
성직자 납세문제
이번 주교회의는 이 문제에 관해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선에서 원칙적인 합의만 봤을 뿐 구체적인 시행 시기 및 방법에 대해서는 결정을 유보했다. 사실 이 문제는 몇 년 전 처음 거론될 때부터 찬·반 양론이 팽팽히 맞섰던 부분. 반대 측의 주된 입장은 신자들의 헌금으로 지급되는 성직자의 생활비는 ‘소득’의 범주에 넣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성직자라고 해서 납세의무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직수행에 관한 사항을 직업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적인 문제 이전에 정신적 지도자로서 모범을 보이고 솔선한다는 차원에서 성직자의 납세는 필요하다는 것이 찬성하는 측의 주장이었다. 이번에 한국 천주교회가 성직자 납세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한 것은 교회와 성직자의 투명성을 부각시키고 최근의 사회분위기에 부응하려는 적극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성직자 납세추진에 따른 문제로는 우선 교구 간 상이한 생활비 지급체계를 통일시키는 작업을 들 수 있다. 다음은 액수를 통일시키는 일이다. 현재 신자들의 헌금 전액을 교구에서 일괄관리하고 사제 개인에게 생활비를 주는 교구는 한군데뿐이다. 이 경우 수여자와 수령자가 명확히 구분되므로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본당신부가 직접 생활비 등을 헌금에서 제하는 타 교구의 경우는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동일인이므로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경우도 교구를 상부의 단위로, 본당을 하부의 단위로 본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마치 은행의 본점(교구)과 지점(본당)의 관계처럼.
사제 생활비는 현재 각 교구마다 1~2만원 정도의 차이가 나므로 이를 통일시키는 것도 시행 의지만 있다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참고로 현행 소득세법 제70조에 근거, 수도권의 한 교구의 사제 생활비와 성무 활동비에 대한 세금 내용을 보면 도표와 같다.
세금을 냄으로써 신부들은 종래 지역의료보험 대상자에서 직장의료보험에 가입하게 되며, 국민연금혜택도 받을 수 있게 된다. 납세증명은 또 이전까지 불가능했던 각종 국민으로서의 권리행사를 가능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직의 정체성’에 대한 우려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교회의는 교구 실무자와 관계 전문가들로 합리적인 납세방안을 연구 검토하게 한 후에 내년 봄 회의 때 최종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종교부지 확보 및 토초세 문제
신도시 건설이 늘어나면서 주택과 상업시설 등은 사전 도시계획에 의해 일정비율로 편성되고 있으나 주민 공동체의 정신적 안정에 필요한 종교시설부지와 복지시설부지는 제외되고 있어 부지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가를 해주더라도 극히 작은 규모여서 종교 시설로서의 요건을 충족시키기엔 무리가 있는 실정. 이로 인해 중심부를 벗어난 외각지를 검토해보지만 이들 대부분이 녹지(임야·전·답)로 지정돼 있어 농지전용이나 형질변경에 따른 세금부담이 크다.
이런 현상은 도시계획법에 따라 도시개발은 추진되고 있지만 동법에서 종교시설을 위한 토지배분의 규정이 없고 다만 사업 주체기관의 의사(도시설계)에 따라 기존시설을 대치하는 수준에서 끝나거나, 약간의 신규 용지만 분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행 세법상 종교용으로 취득한 용지라도 1년 내에 목적사업에 사용하지 않으면 비업무용으로 처리해 일반인의 7.5배에 달하는 취득세를 추징하도록 돼있다.
총대리 회의는 이러한 종교용지 취득상의 문제점과 부동산 및 과세법상의 문제들을 분석해 ‘종교발전을 위한 대정부 건의사항’을 마련, 이번 주교회의에 상정했다. 그 내용은 부동산과 관련, △도시지역에 포함된 농지를 종교법인이 취득할 수 있도록 할 것 △신도시 건설지역 내에 종교용지 설정을 의무화하고, 각 종교별 배분은 공칭 신자수 또는 기타 방법으로 안배할 것 △도시지역 내 상업 업무용 건축물에 종교시설이 설치될 수 있도록 복합건물을 허가할 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과세와 관련해서는 △용도구분에 의한 비과세 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연장할 것 △과세기간 3년간 지가상승에 따라 부과되는 토지초과 이득세를 종교용은 재산수익과 무관하므로 비과세 할 것 △임야나 농지를 형질변경 할 때 부과되는 대체 조성비, 전용 부담금, 개발 이익 환수금은 종교기관에서 개발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므로 면세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주교회의는 이번 총회에서 이 건의안을 검토, 몇몇 부분에 대한 보완작업을 거친 후 정부측에 개정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코드화 승인
금번 주교회의가 교회 내 사무자동화를 위한 코드화를 승인한 것은 전산(자동)화의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코드란 사무자동화에 필요한 기호체계로서 특정한 의미 또는 명칭을 간단한 숫자 흑은 문자로 일정한 규칙 하에 기호화 한 것을 말한다. 따라서 코드화는 정보처리상의 번잡성을 피하고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업무처리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부분.
주교회의에서 승인한 것은 수원교구 총대리 정지웅 신부가 만든 코드화 방안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이 안에 따르면 코드체계는 교구청과 본당 및 산하조직을 함께 고려, □□□ (교구청 번호)-□□ (중분류)-□□□ (소분류)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교구번호는 대표자 회의에서 일련번호를 부여하게 되고(예를 들면 서울 02, 대구 03, 평양 04 등), 각 교구는 기관과 단체를 중분류(02 본당, 03 수도단체·선교회, 04 교육기관, 09 성지 등)소분류로 구분한다. 이때 해당 본당 또는 기관들은 교구별로 설립 혹은 진출 순서로 숫자를 부여하게 된다.
현재 각 교구마다 코드화에 대한 기준이 없이 임의로 코드체계를 관리해 왔으나, 이로써 조직의 일관성이나 자동화 면에서 큰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다. 정 신부는 금명간 전국 교구의 코드를 수합해 보급할 계획이다. 마치 한국 천주교 주소록과도 같이 그것은 「한국 천주교 코드집」 정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