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 가톨릭의 고전] 3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8-10-29 19:25:34 수정일 2018-10-29 19:25:34 발행일 1993-10-10 제 1875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가사형식 인용 가톨릭 문학 토착화 시도

전교·교화목적 서민위한 복음서
‘영세가’ 등 회화적 문체 한글시가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로 사제서품을 받고 조선땅 전국 일대를 돌며 전교에 힘썼던 최양업 신부가 한국 가톨릭교회에 남긴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천주가사」(天主歌辭)의 저술이다.

가사(歌辭)는 고려말엽부터 나타난 3·4조. 4·4조의 긴 시가(詩歌)이다. 1850~60년대 전국을 돌며 전교여행을 하던 최양업 신부가 재래의 대중 문학양식을 빌어 전교와 교화(敎化)를 목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내용으로 만든 「천주가사」는 가톨릭 교리의 토착화와 한국 고유의 가톨릭 문학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교회사적으로나 국문학사적으로 크게 평가받고 있다.

박해 중 교회가 당면한 신앙서 보급의 부족과 신앙교육의 난관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순 한글로 써진 천주가사는 간결하고 회화적인 문체로 누구나 손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에 천주가사는 교회사 학자들로부터 ‘구약성서의 시편과 같은 신앙 고백이며 동시에 일반 서민들을 위한 복음서’로 불리고 있다.

천주가사는 산문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힘이 강한 시(詩)로 돼 있으므로 그만큼 설득력이 있었고 글 모르는 평민들이 천주가사를 암송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신앙 고백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교리를 깨칠 수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문학 이상의 복음서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는 ‘사향가’ ‘영세가’ ‘천당가’ ‘지옥가’ ‘십계강론’ ‘삼계대의’ ‘견지’ ‘고해’ ‘성체’ ‘종부’ ‘신품’ ‘칠극’ ‘혼배’ ‘제경’ ‘행선(行善)’ ‘애덕’ ‘선종가’ ‘사심판가’ ‘공심판가’ 등 총 19편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주교 신앙교리를 주 내용으로 노래하고 있는 천주가사는 천주교 교리를 통해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에게 확고한 신앙심을 심어주고 신자로서 생애를 굳건히 할 수 있도록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최양업 신부의 대표적인 천주가사는 ‘사향가’(思鄕歌). 4·4조의 기본 운율에 총 8백33행으로 ‘어화 벗님네야/우리 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어느 곳이 본향인고/복지로 가자하니/무수성인 못들었고/지당으로 가자하니/아담원조 내쳤고나/…’로 시작 되는 이 사향가는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생각하며 현세의 박해를 이겨내자고 신자들을 권면하고 있다.

만물의 으뜸이신 천주를 믿는 성교인이 된 다행함을 고백하는 ‘신덕가’(信德歌)역시 ‘사람마다 양심하나/바른 것이 으뜸이요/보세만민(普世萬民) 좋은 것은/풍년하나 으뜸이요/…/천당진복 누가 믿나/성교인이 믿었구나/지역영고 누가 믿나/성교인이 믿었구나’ 노래하면서 천주 존재를 진실하게 믿어야 됨을 읊고 있다.

부녀자들과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온 천주가사는 삶의 체험을 천주교 교리로 명쾌하게 설명해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이조 봉건사회에 천주교가 빠른 속도로 민중에 깊이 뿌리박을 수 있도록 일조했다.

현재까지 3가지 소장본이 전해지고 있는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는 재래의 민족 문학양식을 빌어 가톨릭 문학을 토착화한 초유의 문학 장르라는 점에서 귀중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김옥희 수녀에 의해 현대문으로 옮겨진 최양업 신부의 「천주가사」는 교회 전국 서원에서 보급, 판매되고 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