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오후 6시 30분경 가톨릭 센타 5층 농민회 사무실에서 갑자기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광주의거 유가족과 부상자들의 피맺힌 절규였다. 이들은 당일 같은 시간에 YMCA 1층 대강당에에서 광주의거에 대한 윤성민 국방부 장관의 일방적인 거짓 발표와 여당측의 거짓 책동、관제언론의 거짓 보도를 규탄하는 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당국의 철저한 봉쇄로 대회를 열 수없게 되자 마지막 수단으로 가톨릭 센타를 농성 장소로 택한 것으로 보여 졌다.
가톨릭 센타 주변은 곧 인파로 붐비기 시작했다. 순간 최루탄 가스가 거리와 건물을 뒤덮었다. 시위도 없었다. 오직 호기심으로 지나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던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로 최루탄을 쏘아댄 것이다.
금남로 길은 도청 앞에서부터 한국은행까지 마치 공습의 현장처럼 삭막해졌다. 차량과 시민들의 통행이 완전히 차단된 것이다. 텅빈 거리엔 오로지 방패와 철모로 중무장한 전경대원들과 사복차림의 기관원들만 적진지를 향하듯 가톨릭 센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사이에 충장로 한켠에서는 대부분 아주머니들인 광주의거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빗물과 흙탕물 최루탄 분말로 뒤범벅이 된채 목쉰 울부짖음을 토하고 있었다.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의 숫자가 약간 늘자 또다시 시민들의 머리 위로 최루탄이 쏟아졌다. 가톨릭 센타 뒷길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후 8시경 난데없이 전기톱과 쇠망치 도끼등을 꼰아쥔 2~30명의 사복들이 가톨릭센터를 돌진해 들어왔다. 이들은 계단입구의 철제 샤타를 젖히고 농민회 사무실 문짝을 박살내며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끌어내 연행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지난 5월 17일 남동천주교회에서 거행된 5ㆍ18 추모미사 때 저지른 경찰당국의 만행을 상기하지 않을수 없다. 추모미사가 끝난 뒤 참가한 학생들이 노래를 부르며 지극히 평화롭게 성당앞을 나서자 경찰은 전경대원들을 앞세워 최루탄과 곤봉으로 해산시키고 일부 학생들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10여명이 부상당했던 것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폭거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성직자 수도자 및 일부 노약자들만 남아있는 성당안에까지 최루탄을 쏘아댄것이다.
이로 인해 사무실의 유리가 파손되고 몇사람이 파편에 부상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는 교회에 대한 고의적인 탄압이었다.
이 사태에 대해 교회는 엄중히 항의했고 지방경찰 책임자가 구두로 사과하는 선에서 더 이상의 강력한 항의 수단을 유보한 바 있다.
그러나 불과 한달만에 다시 교회기관에 대한 음해가 정부 당국에 의해 저질러진 점에 대해 우리는 강력한 항의와 규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당국의 비위에 거슬리는 방법으로 농성하는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연행할 수 밖에 없다는 그들 나름의 논리를 편다해도 건물주인 교회측과 한 마디 상의나 양해도 없이 마치 적진지를 돌격하듯 침입해 들어온 행패는 교회에 대한 분명한 탄압으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우기 교회측과 농성자들간에 대화로써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불과 1시간 30분만에 무법천지의 무뢰배들처럼 교회기관의 건물일부를 파괴시키면서까지 폭력적으로 사태를 진압하고자 한 당국의 처사는 규탄받아 마땅한 것이다.
더우기 YMCA, YWCA등에 대한 노골적인 집회방해, 수색, 압수사태가 이번 가톨릭센타 농성으로 연결된 점을 생각할때 농성사태의 근본원인과 책임은 바로 정부당국에게 있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땅에 참된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기를,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목소리, 진실의 행렬을 최루탄과 곤봉ㆍ폭력의 수단으로 봉쇄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언필칭 대화정치를 구두선으로 내놓고 있으면서도 현정권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다면 이땅에 정의와 평화는 요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 당국은 교회에 대한 음해와 진실의 행렬에 대한 폭력적 탄압을 즉각 중지해야 할 것이다.
<6월23일자 광주대교구「벛고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