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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가서 미사참례를 한 뒤에 소말리아 굶주림을 보여주는 비디오를 보았다. 20년간의 가뭄이라면 풀뿌리조차도 살아날 수 없는 불볕더위이니 사람인들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1주일을 굶고 앙상한 뼈마디만 남은 어린이들과 먹을 것을 주어도 먹지 못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사람으로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그리스도교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몸소 실천하는 종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데 재력과 힘을 기울이기 보다는 오히려 장소와 도구 단체를 운영하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전을 크고 아름답게 짓는 것도 좋은 일이다. 또 하루에 묵주기도를 수십 번 한다고 해도 나무랄 사람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지 않으셨던가?
교회란 바로 예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믿음의 공동체이다. 만일 우리 교회가 뜻을 가지고서 실천만 한다면 소말리아나 에티오피아와 같은 나라의 기아를 구제하는 것쯤은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교 국가라고 할 수 있는 구라파와 북미주는 먹을 것이 남아서 일부러 폐기하기도 하고 너무 먹어서 살이 찐 나머지 살빼기 운동을 하며 또한 비만아까지 태어나고 있다. 사정은 어디서나 똑같다. 미국에서는 밀가루가 남아돌고 한국에는 쌀이 처치곤란이다. 우리나라에서 먹다 남은 찌꺼기만도 소말리아 하나는 구할 수 있다고들 한다.
적어도 우리는 먹는 문제만큼은 세계가 공동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나눔이다. 한사람이 하루에 열끼를 먹는 것도 아닌데 남은 것을 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못하는가?
주보에「사랑이 없는 나눔은 있어도 나눔이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쓰여진 것을 읽었었다.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강제성을 동원해서라도 우리의 굶어가는 이웃을 도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