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 길을 떠나려고 몇 개의 렌트가 점포를 기웃거리다가 「Herz」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오늘이 7월 초이렛날, 성모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축일이기도 하여 내 머릿속에는 갑자기 트럼펫과 오보족들의 나팔소리가 상상으로 울려퍼졌는데 이내 그 멜로디는 바하가 성모방문 축일에 작곡한 칸타타 147번 도입부의 밝고 화려한 분위기가 되었다. 정처없이 길을 떠나려는 내 눈앞에 음울한 캄포산토 (교회묘지)와 로마네스크풍의 고즈넉한 파자 광장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시에나의 붉은 벽돌광장이 환하게 펼쳐졌다. 옮거니 깜포광장에서 벌어지는 시에나 「파리오」의 축제가 바로 오늘 7월 초이레가 아닌가. 빌려 탄 조그만 흰색 조랑말 피에스타 (우리나라에서는 프라이드로 부르는) 를 몰고 시에나로 가는 길에서 『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 (칸타타 147의 제목 「마음과 입과 행동과 생명))의 아리아 「예수여 길을 만든소서」와 저 유명한 코랄 합창 「예수는 사람의 기쁨」을 흥얼거리며 70km를 남쪽으로 내달았다. 간간히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씨여서 고속도로를 택하였지만 피사로 되돌아 갈때는 지방도로를 타고 가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도중에서 일어난 기이한 일들은 피렌체에서 시에나까지의 거리를 열배로 늘렸고 사흘 뒤에 나는 축제 후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와 있는 조용한 시에나로 들어갔다.
시에나는 토스카나의 한가운데 위치한 산성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진흙을 구워 만든 붉은기와로 뒤덮여 있고 유명한 깜포 광장 또한 붉은 벽돌로 포장되어 있어서 회화에 쓰이는 물감색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는데 「Burnt Siena」 라고 표기된 「땅색」이라는 이름이 바로 이 도시의 이름이다. 로마시대와 중세때 시에나는 올리브 기름의 대집산지여서 활발한 교역의 중심지였으니 시에나의 붉은색은 전세계로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도시 전체의 붉은 테라코타 색과 강한 대조를 이루며 독특한 형상을 지닌 시에나 대성당은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피렌체에서 이 도시로 들어오는 진입 교차부에서 바로 눈에 들어 온다. 종탑의 외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죄수복처럼 줄무늬가 두드러진 양상을 띄고 있는데 이것은 수평선을 강조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러나 시에나 대성당은 건축양식의 분류에 따른다면 로마네스크와 르네쌍스 양식이 혼합된 과도기 내지는 절층식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성당 앞에 우리나라의 당간지주와 같이 녹물로 얼룩진 독립된 돌기둥 위에 늑대의 젖을 먹고있는 두 아이의 형상 조각은 이 도시의 기원설화가 로마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즉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형인 레물루스의 아들 세네우스와 아키네스가 삼촌을 피하여 시에나에 정착하기 위하여 운명의 여신 다이아나와 태양신 아플론 신전에 재물을 바치고 신탁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다이아나의 신전에서는 흰 연기가 아플론의 신전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결국 이들은 스스로의 안위를 위하여 흑과 백의 문장을 동시에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화가 있다.
대성당의 외관 역시 이러한 전설과 부합되는 백색과 흑색 (자세히 보면 짙은 초록색이지만) 의 돌띠로 장식되어 있고 도시의 깃발에도 흑백의 기가 눈에 많이 뜨인다. 시에나 대성당을 설계하였고 시에나를 대표하는 예술가는 건축가이자 조각가였던 니콜라 피자노 (1206~1278)와 지오반니 피자노 (1250~1314) 부자이다.
아버지 니콜라는 대성당 최초의 건조에 종사하였고 장대 화려한 대성당 정면의 설계는 지오반니의 작품이다. 특히 아버지 니콜라 피자노는 르네쌍스 여명기에 그리스 로마 조각예술의 주종을 이루었던 소조예술을 재생시킨 공이 지대한 사람으로 시에나 대성당의 강론대와 피사대성당의 세례당 강론대 (Perpitum : 설교단)를 제작하였다.
시에나 대성당 강대는 8개의 기둥중에 4개의 기둥이 사자의 등 위에 서있어 매우 이채롭고 특이하다.
성당 내부 역시 종탑과 같은 흑백의 줄무늬로 모든 벽과 기둥이 장식되어 있으며 측창에서 보이는 고딕 스타일의 포인티드 (첨두) 아치는 천정에서만 나타나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로마네스크 양식인 반원형 아치로 연결되어 있다.
대성당 바닥은 56개의 성서 이야기를 그린 아름다운 대리석 상감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바닥 가운데 앞서 말한 시에나 공국의 건국설화인 이리의 젖을 빠는 두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대성당 좌측랑에 있는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피꼴로 미니의 제단 (나중에 교황 피우스 3세가 되었던 시에나출신의 추기경) 과 피꼴로미니 도서관의 벽화를 보고 나와 다시 한번 대성당 정면을 쳐다본다.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 원형창 위에 금빛 찬란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성녀 카타리나의 제관 그림이 삼각 박공을 안에 아로새겨져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도시에서 살았고 신전에서 폭군을 설교하였던 순교자 카타리나가 천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의 왕관을 씌워주는 그림 위에는 날개 달린 천사가 창을 꼰아든 모습으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어느덧 활짝 개어버린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파란 여름 하늘 속에 당당히 서있다. 바로 저 창이 성녀 데레사의 가슴을 찌른 것일까? 아니 참 그것은 금빛 화살이었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 「성녀 데레사의 환희」를 마음속에 떠올리며 산 지오반니 거리를 따라 저 유명한 깜포 (Plazza del Campo)광장으로 내려간다. 시에나 최대 매력의 포인트는 바로 이 깜포 광장에 있는데 도시의 진입부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 이윽고 마지막 경사면 도로를 막는 건물이 보이고 그 아래는 광장으로 통하여 있는 아취 모양으로 뚫린 통로가 사람들을 손짓한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탁트인 붉은 벽돌 광장에 쏟아지는 햇빛은 이 중세도시를 한층 경이롭게 한다. 경사진 광장은 봇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에서 나오는 조개형상을 하고 있는데 붉은 부채꼴의 광장에 부채살을 대어 놓은 듯한 아홉개의 흰 경계석은 공화국 시대 아홉명의 집정관을 둔것에 유래한 것이다.
늦은 오후의 지친 태양이 광장 앞 「만쟈의 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높이가 1백2미터의 달하는 이 광장의 명물은 시에나의 화가 립포 멤미 (Lippo Mlemmi)가 만든 것으로 전해온다. 그는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
랄카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시모네 마르티니 (1285~1344)의 처남이다. 시모네는 시에나의 선대 화가 둣치오의 영향을 받은 화가로서 소위 시에나 유파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깜포 광장 정면에 「만쟈의 탑」과 함께 서있는 건물이 시에나 공화국 청사 즉 팔랏쬬 푸블리코인데 이 건물안 궁전의 큰 방안에 동정녀 마리아와 그 주위를 둘러싼 성인들을 그린 유명한 「마에스타」(Maesta 장엄이라는 뜻으로 시에나 사람들이 부르는 「천개의 성모」 (그림) 가 그려져 있다.
시모네에게 영향을 끼친 둣치오(1255~1319) 는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성모상을 주문 받았는데 이 성당의 유명한 루첼라이 소성당의 성모상과 지금은 시에나 대성당의 미술관에 있는 옥좌의 성모 (역시 마에스타의 제단으로 불리운다) 가 입고 있는 의상에 나타나는 검정색을 유의해서 보아둘 일이다.
「선정과 비정을 베푸는 정부의 효과」라는 통치 교훈화를 시에나 공화국 청사 평화의방 벽면에 프레스코로 그린 프란치스꼬회의 수사 압브로지오 로렌제티는 역시 시에나 사람으로 화가 피에트로 로렌제티의 동생이다. 암브로지오가 그린 도시의 배경에 쓰여진 색깔 역시 검정색이다. 성모 마리아의 그림 중에서 흑색이 주로 사용되었던 예는 초기 동방교회 즉 비잔틴 양식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10세기쯤 뒤에 시에나의 화가들이 르네쌍스 여명기에 흑색을 쓴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즉 시에나파라고 불리우는 화가들 역시 아폴론 신전의 검은 연기가눈에 어렸던 것일까?
아니면 흑사병이 만연되는 시절이라 늘 「죽음의 승리」를 두려워해서 였을까?
광장의 상단부에 있는 가이아의 분수는 시에나의 조각가 야코보 달라쿠에르치아 (1374~1438) 의 작품인데 이 사람은 현대 소조의 뼈대를 세우는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으로 조각가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1420년 가을 완성된 야코보의 분수대는 시민들에게 큰 만족을 주게 되었고 그뒤로 부터 사람들은 그를 야코보 달라쿠에르치아로 부르지 않고 야코보델라폰테 (Fonte)라 불렀으니 즉 「분수 잘 만드는 야코보」라
는 뜻이다. 그는 이 작품 한가운데에 이 도시의 주보성인인 「영광의 성모 마리아」를 조각하였다.
야코보는 대리석을 매우 정교하게 조각하여 정말 피부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조상을 완성하였는데 그 옆에 있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도 매우 뛰어난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은 현재 공화국 청사 박물관에 놓여 있다.
깜포 광장에서는 매년 7월 초이렛날과 8월 16일 즉 성모방문 축일과 승천축일 다음날에 「빠리오의 축제」가 있다. 빠리오는 이 도시에서 성모마리아를 수놓은 기를 뜻하는데 시에나 시의 17개 지구 (콘트라디라 부른다) 에서 뽑힌 10개 지구로부터 모여든 대표 경주마 시합이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이는 13세기 시에나시를 59지구로 구획정리하면서 각 지구별 경마대회를 한 것에서 유래한다.
5층 높이의 광장 주변 건물들이 축제때 주는 음향의 선율 또한 매우 다채로우리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경사지고 구부러진 중세의 골목을 오른다. 시에나 초입의 아무렇게나 매어둔 피에스타가 갑자기 생각나고 불안해진 내 마음을 부채질 하려는지 태양은 벌써 저만치 기울어 언덕위의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