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교회는 사회쇄신의 길잡이/박일영

박일영ㆍ효대 종교학과 교수
입력일 2017-07-03 18:42:39 수정일 2017-07-03 18:42:39 발행일 1993-02-07 제 184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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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가톨릭이 전래될 당시 위정자들은 그때까지 사회의 정신적 지주이던 유교가 통합기능을 이미 상실해 가고 있음을 감지하였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종교사상으로서의 가톨릭을 바로 자신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간주하계 되였다. 한국 가톨릭의 역사가 초창기부터 피로 얼룩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수구 세력들의 견제라고 볼 수 있다. 교회는 연이어 제국주의적 침략의 시대를 지나 동족상잔의 아픔까지도 겪어야 했다. 한국사회 안에서 가톨릭교회는 이렇듯이 그 시작에서부터 격동의 시기를 헤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2백여 년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돌이켜보면, 교회가 민족의 고통을 외면하고 내세의 행복만을 내세울 때 여타 노력들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교회의 우선적 사명은 민족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좌절에 동참하여 복음의 참된 정신을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증시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교회의 기반과 이유는 역사상의 한 구체인물, 그리스도라 부르는 예수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과 소신을 오늘 여기에 현실화 시키는데에서 그리스도 교회는 타당한 존속여부가 결판난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선교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과 소신으로 회귀하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때에라야 비로소 한국교회가 이루어 오고 있는 양적 성장이 질적 성숙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제 세간에서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러한 선교현장에서 한국의 가톨릭교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오늘과 내일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리스도 교회가 지켜 나아가야 할 본연의 임무 중 하나가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는』 예언자적 사명이다. 그래서 교회는 여하한 상황 하에서든지 하느님의 정의를 지키려는 자신의 처지를 의연하게 간직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회는 민족의 미래와 개개인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책임도 지고 있다. 다음에 짚어보는 몇 가지 과제들은 바로 격랑의 한가운데 있는 한국사회에 대하여 교회가 비중을 두어야 할 문제들이 아닌가 한다.

먼저,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외세에 의하여 남북으로, 내분에 의해 동서로 갈린 민족의 화해와 일치에 우선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분단의 극복을 지향하는 통일운동은 「지금 여기서」 한반도가 처한 최대의 과제이다. 구체적인 인간을 해방하고 구원하려 봉사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는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민족안에서 실제로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 하여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며, 그 바람직한 모습인 화해와 일치를 지향하는 안팍의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러면서 또 한편, 현대사회의 특징인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동보조를 맞추어야 겠다. 갈등과 상극의 시대를 지나 세계는 바야흐로 공존과 상보의 정신을 존중하게 되었다. 이러한 조류는 종교 문화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종교다원주의가 최근 신학의 주요논제가 되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다양한 종교들이 활발히 살아 움직이는 사회이다. 전환기의 불안심리와 함께 한민족의 강한 종교성은 작금 종교의 새로운 부흥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흥종교들의 약진이라든가, 기성종교 안에서 신비주의류의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띤다. 수많은 종교들의 동시적 부흥은 자칫 종교간의 분쟁 소지를 배태할 수도 있다. 이러한 때 한국 가톨릭은 포용성과 아량으로 타종교를 대하면서, 자기 중심주의적 독선을 물리치고 다중심적(polycentric) 대화와 협력에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터이다.

다음으로 관심 두어야 할 분야는 참다운 권위의 재건이다. 의지해야 할 가치척도로서의 규범이 무너짐으로써 이 사회에는 올바른 권위가 실종되었다. 권위(權威 authoritas)라는 말은 동ㆍ서양을 막론하고 「정확하게 저울질 한다」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잣대가 정밀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척도를 다시 만들어내어 제시할 때 권위는 복원된다. 가톨릭교회는 이미 1백여 년 전부터 기술산업사회의 가치를 재는 잣대를 본격적으로 계발해 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톨릭 사회론」이다. 한국교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에 가톨릭 사회론을 적용하고 스스로 실천할 때 이 사회에 본보기를 마련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의 강한 종교심성을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적극적 원동력으로 고양시키는 문제이다. 무분별한 격정의 폭발이라든가 한풀이가 아닌,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해결, 「그리스도 안에서의 풀이」(christo-therapy)로, 그리스도의 평화로 이끌어가는 길을 찾는 작업이 이루어질 때 「신인(神人)으로서 자신을 비우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하게 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이 사회에 구현되는 날도 요원하지만은 않으리라.

박일영ㆍ효대 종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