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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북한의 식량 배급체계와 시장화 / 윤여상 박사

윤여상 박사(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입력일 2014-01-07 05:03:00 수정일 2014-01-07 05:03:00 발행일 2014-01-12 제 2878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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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식량 생산량과 주민들이 배급받은 식량의 양을 비교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난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시기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400만 톤을 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는 503만 톤의 식량을 생산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북한 주민 1인당 1년 곡물소비량을 174kg으로 계산할 경우 북한의 금년도 식량 수요는 537만 톤이라고 식량농업기구(FAO)가 밝혔다. 결국 북한에 금년도 부족한 식량은 34만 톤 수준이다. 그런데 북한 농업성은 2014 회계연도에 식량 30만 톤을 수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 부족한 식량은 4만 톤에 불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국내 입국한 탈북자 대상으로 북한 생활 당시 배급받은 식량을 조사한 결과 매달 식량을 배급받은 비율은 10~20%에 불과하다. 또한 연간 수요량을 국가의 배급으로 충당한 비율도 10~20% 밖에 안 된다. 나머지 80~90%는 국가로부터 전혀 식량을 배급받지 못했거나 가끔 소량의 식량을 배급받았다고 응답했다. 전체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식량의 10~20%만 국가의 배급으로 받았을 뿐 나머지는 스스로 구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북한은 최악의 식량난을 경험했던 1990년대 후반에도 300~400만 톤 전후의 식량을 생산했다. 최대 식량 부족분은 200만 톤 수준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최악의 상황에서도 1년 중 8개월은 배급이 나오고 4개월만 중단되어야 한다. 아니면 1년 12달 배급을 주되 필요량의 2/3은 배급을 주었어야 계산이 맞다. 그런데 연간 필요한 식량 전체를 국가 배급으로 받았다는 탈북자는 10~20%에 불과하다. 탈북자는 북한에서도 취약계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식량 배급량이 작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주민 중 당원 비율과 탈북자 중 당원 비율에 차이가 없다. 직업분포와 학력도 전체 북한 주민과 거의 차이가 없다.

북한주민들은 필요한 식량 중 10~20%만을 국가에서 배급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재 대부분이 굶어죽는 것도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대량 아사 사태가 있었지만 그 이후는 만성적 기근의 수준이지 대량 아사 사태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북한의 자체 생산 식량으로 현재는 적어도 10개월 이상은 정상적인 배급이 가능하다. 그런데 주민들은 1, 2개월만 식량 배급을 받고 있는데도 대규모 아사자는 발생하지 않고 있다. 미스터리한 결과이다. 그 원인은 북한의 배급체계 붕괴와 시장의 발달에서 찾아야 한다. 식량 생산량은 증가하고 있으나, 붕괴된 배급체계는 복구되지 않고 있다. 배급으로 주어질 식량이 시장에서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 누가 어떻게 배급으로 분배될 식량을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는가? 그건 바로 ‘부패’와 주민들의 생존 능력 때문이다. 주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위해서 뙈기밭을 가꾸고 산을 개간해서 식량을 확보하고 있다. 힘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을 활용해서 배급해야 할 식량을 시장에 유통시키고 달러와 중국 위안화로 현금화하고 있다.

북한의 시장화 비율은 동독 붕괴전이나, 중국 개방정책 실시전보다 높다고 한다. 북한 권력자들의 부패와 주민들의 이악스런 생존능력이 시장을 확대시키고 있다. 적어도 현재 북한 주민들은 시장 덕분에 아사는 피할 수 있다. 또한 그 덕분에 시장에서 현금을 축적하는 세력과 단순 소비자로 전락하는 세력 간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시장 확대를 내심 반기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윤여상 박사(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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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상 박사(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