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부터 5.18 특별법 제정이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중 하나로 떠올라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며칠 전에 이 특별법의 제정을 민자당에 지시했고 온 국민이 그 법 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특별법에 포함되어야 하는 핵심적 내용에 관하여도 좋은 의견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시되고 있다
5.18특별법의 필요성이나 핵심적 내용을 논의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먼저 숙고하고 규명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민주화운동에 관련하여 우리국민이 시원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본문제가 무엇인지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5.18특별법이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미해결 문제는 우리가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을 확고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범죄인이 법에 따라 평등하게 처벌을 받아야 하다는 원칙을 선명하게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선행은 포상받고 악행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원칙을 굳게 믿고 있으면서 오로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게 관해서는 이 원칙을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크나큰 문제이다. 상이나 벌이나 각자의 것을 각자에서 돌려 주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도 우리는 아직도 분명하게 세우지 못하고 있다.
법앞에 평등의 원칙, 공정한 상벌의 원칙, 그리고 정의의 원칙을 마음속에서는 모두가 굳게 믿고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하여는 그 원칙들을 철저하게 적용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이 우리를 심히 불편하게 하고 있다. 원칙은 모든 사람과 사건에 대하여 공정하게 적용될 때에만 원칙으로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에 광주민주화운동에 연관된 범법자와 희생자에 대하여 이 원칙들을 철저하게 적용하지 못하면, 범법자들은 성역으로 만들어지는 동시에 우리의 소중한 원칙들은 죽고 말 것이다.
중대한 기로에서 세워지지 못한 원칙은 생명력을 잃을 것이고 우리 마음에서도 약화되고 혼돈에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원칙들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강제로 적용한다 해도 그들은 수긍하지 않고 반항하거나 깊은 불만을 느낄 것이다. 정말 이렇게 중대한 원칙들이 약화되거나 죽는다면, 우리의 장래는 혼돈스럽고 어두울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은 해방 이후 친일파에 대하여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 실패는 아직도 민족의 한과 수치로 남아 있으며 지난 50년간 다양한 범죄를 증가시켰다고 보고 싶다. 광주민주화운동에 연관하여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여서는 결코 안된다. 이 기회에 우리는 그 원칙들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질서있고 원칙 있는 미래사회를 만들려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5.18특별법의 최종목적은 법앞에 평등, 공정한 상벌의 원칙, 정의의 원칙을 선명하게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특별법은 국민 모두와 우리의 후손과 미래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이 우리의 소중한 원칙을 세우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만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얄팍한 정략은 결코 용인되지 말아야 한다.
재야 법조계에서는 철저한 사실규명과 공정한 처벌을 위한 특별검사제도,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 위원회의 설치, 쿠데타 재발 방지를 위한 헌법 파괴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등이 특별법에 포함될 핵심적 내용이라는 의견도 제시하였다. 여권에서는 처벌의 최소화를 주장하고 검찰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특별검사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물론 5.18특별법의 구체적 내용을 생각해 보고 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숙고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특별법제정에 참여하는 모두가 먼저 염두에 둘 것은 국민이 해결되기를 바라는 진정하고 근원적 문제는 무엇인지를 명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법은 그 근원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가장 적합해야 한다.
5.18특별법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시급한 당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정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깊은 슬픔에 빠지고 절호의 기회를 영구히 놓치고 말 것이다. 원칙들은 확고히 세워져야 하며 법은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