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라르쉬(L’ ARCHE) 공동체」란?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2-02-20 20:24:13 수정일 2012-02-20 20:24:13 발행일 1997-11-23 제 207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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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7명에 협조자 7명”「상호 수용과 사랑」으로 생활
「노아의 방주」 뜻…장애인들에 꿈의 공동체
전 세계 107개 공동체 4천여 명이 한 가족
1964년 창립…한국엔 뿌리 내리지 못해


라르쉬(L’ ARCHE) 공동체. 생소한 이 이름의 공동체에는 땀과 사랑 이상의 그 어떤 의미가 배여 있다.

지난 11월 10일 서울 가톨릭장애인 복지협의회의 초청으로 방한한 장 바니에씨(본보 11월 16일자)를 통해 한국교회에 새롭게 알려진 「라르쉬 공동체」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는 「꿈의 공동체」로 알려져 있다.

수용중심의 복지시설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라르쉬 공동체는 한국교회는 물로 사회 전반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30여 년 전인 1964년, 토론토 성 마이클대학 철학교수 출신의 장 바니에씨가 두 명의 정신지체 장애인과 북프랑스의 한 농가에서 함께 삶으로써 시작된「라르쉬 공동체」는 불어로「노아의 방주」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1백7개의 공동체의 규모로 성장한 라르쉬 공동체는 4천여 명의 가족으로, 아시아권에서는 일본에 하나의 공동체가 정신지체 장애인 15인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비롯해 호주에 1개, 필리핀에 1개, 그리고 인도에는 무려 5개의 공동체가 생기로 가득 찬 기쁨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장 바니에씨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라르쉬 공동체의 핵심적인 영성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거리낌 없이 『상호수용과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라르쉬 공동체의 가장 크고 주요한 삶의 방식은 「상호수용」이다. 따라서 라르쉬 공동체는 봉사자가 장애인에게 무조건적인 봉사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주고 바꿔 주는」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장애인과 협조자」라는 라르쉬 공동체의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봉사자가 아닌 협조자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조자인 일주체도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변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라르쉬 공동체의 삶은 기도원과 같이 조용한 산 속에서 파묻혀 사는 삶도 아니요 집단 수용을 우선 목적으로 하는 여타의 복지시설에서의 삶은 더 더욱 아니다. 이들의 공동체는 철저히 일반인들의 삶과 더불어 이뤄지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본당에 소속돼 본당활동을 누구보다 열심히 하기도 하고 서투른 손으로나마 행하는 서로에 대한 봉사를 생활의 기쁨으로 여기기도 한다.

창립 33주년을 넘기고 있는 라르쉬 공동체가 아직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운용양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지체 장애인 7명에 일반 협조자 7명」이라는 라르쉬 공동체의 일반적인 구성은 공동체 구성원간의 철저한 상호수용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또 공동체가 분화해 다른 곳에 또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게는 5년에서 많게는 십 수 년씩 라르쉬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보고 스스로 변화됨을 느껴 본 경험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그래야만 라르쉬 공동체만의 영성과 삶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파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공동체원들의 믿음이다.

그래서 『장기투신하며 장애인들이 지닌 아름다움을 보고 스스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곳』라르쉬 공동체는 우리에게 가깝지만 또 멀 수밖에 없는 곳이기도 하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