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매순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택시를 타는 사람이 그 택시기사를 믿을 수 있어야 탈 수 있고 의사를 찾는 환자도 그 의사를 믿을 수 있어야 병을 고칠 수 있다. 여행하는 사람도 그 행선지로 가는 안내자의 말을 믿어야지 여행을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의 믿음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소위「맹목적인 믿음」이다. 예컨대 어떤 노인 할아버지 말씀이『나를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저기 설악산에 가서 하늘을 향해서 절을 백번하면 영원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고 했을 때 아무런 생각 없이 무조건 그 할아버지 말을 믿고 그대로 행동하는 행위는 소위「맹목적인 신앙행위」라고 한다. 인간은 그 자체가 믿어야만 살 수 있고 언제나 믿지 못하면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허무맹랑한 것도 믿을 수 있다. 이런 믿음을「맹목적인 신앙」이라고 한다.
두번째는「믿음」의 그 이유와 근거를 갖고 믿는 믿음이다. 이것을「가신성에 바탕을 둔 믿음」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끼리도 처음 만난 사람이 돈을 꾸어달라고 했을 때 거기에 아무런 이의를 붙이지 않고 돈을 빌려주어서 떼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맹목적인 믿음의 결과이다. 그러나 그 사람을 여러번 경험해서 어떤 진실이 발견되었을 때 그의 말을 믿는 것이 소위「가신성에 바탕을 둔 믿음」이라고 한다. 이 믿음은 결코 깨어질 수 없고 따라서 그「믿음」으로 인해서 어떤 불안도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 믿기 위해서는 진실이 전제 되어야 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진실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믿게 된다.
따라서 신앙은 바로 진리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진실이 없는 믿음, 진리가 없는 신앙은 공허하고 결국 그 믿음은 우리에게 커다란 실망을 안겨다 준다.
우리의 종교적인 신앙은 이 세상을 만들었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우리에게 귀한 생명을 주셨고 이 순간에도 우리의 생명을 보존해 주시는 절대진리(이 진리는 과학적인 진리도 아니고 수학적인 것도 아니다)를 승복하는 행위이다.
죽음과 삶의 진리를 정확하게 말씀과 행동으로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진실성 앞에 우리가 무릎을 꿇는 것이 곧 신앙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인간이 깨달을 수 없는 절대 진리를 긍정하는 초월적인 행위이다. 우리의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창조하셨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그 절대 진리의 원천이시고 진리의 주인공이신 그 분을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진실이 없는 믿음은 허황된 믿음이다.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에게 허탈과 좌절을 가져다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믿음」은 어떤「믿음」이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