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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 (10) 정공법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
입력일 2011-06-29 10:34:00 수정일 2011-06-29 10:34:00 발행일 2011-07-03 제 2753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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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려 꾸준히 쌓아가는 인생 참으로 보람 있고 탄탄한 인생이 아닐까?
올해도 3월 초까지 스키를 탔다. 친구들은 날더러 그 나이에 스키를 탄다고 야단들이다. 너무 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걱정해주는 이유를 나는 잘 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 올해 나는 만으로 81살이다.

허지만 스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운동이 아니다. 무리를 하지 않고, 객기(客氣)는 절대 부리지 말고, 눈 위에서 바람 쐰다는 정도의 기분으로 조심조심 타면 결코 위험할 리가 없다. 그렇더라도 나이는 역시 나이다. 한 해 한 해 다시 시작할 때에는 스키를 메고 다니고 그것을 신고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일을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지금 나의 판단은 이렇다. 아직 몇 년은 더 탈만하다.

스키를 처음 시작한 것은 내가 환갑 되던 해다. 그러니까 시작한지 지금까지 20년이 지났다. 그러나 햇수로 그렇게 됐다는 것뿐이지 아직도 중급자 코스를 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씁쓸한 회한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스키를 배우기 시작할 때 좋은 코치를 만나지 못한 것이 나의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아니 코치 탓을 해서 무엇 하겠는가. 빨리 늘려고 서둔 나머지 스키 타는 자세에 이상한 버릇이 붙어버린 것이다. 버릇이 붙는 데에 3년, 그리고 나머지 17년은 순전히 이 나쁜 버릇을 고치는 데에 바친 꼴이 됐다. 이 무슨 낭비인고!

아마 처음 3년 동안 짧은 시간 안에 숙달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기본자세를 탄탄히 하는 일에만 매달렸더라면 지금쯤 훨씬 더 숙달돼 있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스키의 기본 동작은 스키 끝을 ‘A’자 형으로 모으는 ‘풀르그보겐’이다. 다음은 ‘슈템 턴’ 거기에서 ‘패럴랠 턴’으로 나간다. 그런데 ‘풀르그보겐’도 제대로 못하면서 ‘패럴랠 턴’ 흉내를 냈으니 자세가 이상하게 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한 가지 다행으로 여기는 것은 스키를 시작할 때 싫어하는 아내를 애써 설득해서 스키에 끌어들였다는 사실이다. 요새 와서는 아내가 나보다 더 열심이다. 그래서 어쨌든 간에 겨울철엔 눈 위에서 아내와 동거동락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스키에서도 인생을 배운다. 이것은 하나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이송아바 마와레.(급하면 돌아가라)’ 흔히 듣는 일본 속담이다. 무슨 일을 할 때건 정공법(正攻法)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일을 겪어야 할 단계가 되면 정공법을 외면하고, 이것 말고 딴 방법은 없나 하고 두리번거린다. 이런 심리도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경제적 동물로 태어났으며, 경제적 동물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성과를 본능적으로 갈구하기 때문이다. ‘공짜’를 좋아하는 것도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공법은 무슨 일을 떳떳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론 기계(奇計)나 잔꾀를 써서는 안 된다. 정공법의 반대어는 무엇일까. ‘편법(便法)’ 쯤이 아닐까. 편법은 일시적으로는 이득이 될는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기간을 놓고 볼 때엔 거기에 드는 비용이 결코 정공법을 쓰는 경우보다 싸지가 않다. 또한 편법을 써보면 편법에 의지하는 습성이 생기게 되며 이것은 비용문제와는 또 다른 문제다.

땀 흘려 꾸준히 쌓아가는 인생. 이런 인생이 참으로 보람 있고 탄탄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의 인생에서 너무 많은 낭비를 해왔다. 그리고 나서 뒤늦게 인생의 정공법의 골자를 정리해본다. 서두르지 않는다.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는다. 쉬지 않는다. 항상 위를 바라본다…

이미 많은 때를 놓친 나 자신에게 중얼거리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젊은 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다행이겠다. 제때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때 늦게 깨닫는 것, 이것이 인생의 심각한 아이러니다. 그건 그렇고 겨울이 기다려진다. 올겨울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눈의 환경을 즐기리라.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