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나 되돌아가고 싶어』하면서 막 터널을 나와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내지르는 절규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메이리쳤다.
영호라는 한 남자가 절망에 겨워 죽음을 선택하면서 기차가 달려오는 그 찰나에 긴 시간여행을 한다. 20년이라는 세월을 한꺼번에 거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와에 있었던 일부터 되짚어서 말이다. 그 여행은 선로를 따라 계속된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면서….
그가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 시간은 어느 지점인가. 그가 하는 여행에 동반해보면 플롯(줄거리)의 결과가 먼저 제시되고 원인이 되는 플롯은 다음 단락에 나오는 특이한 전개방식을 갖고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무엇이 이 남자를 이토록 절망에 빠트리고 황폐하게 하였는지, 그 근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다 보면 거기엔 우리 현대사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가해자가 되기엔 너무 순진무구한 착한 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착한 손은 언제 어디서나 김영호라는 것을 알아보는 표가 되었다.
첫사랑의 애인 순임이가 건네는 그 순백의 박하사탕을 받던 손, 첫 야유회에서 강가에 핀 보랏빛 들꽃을 보면서 카메라 뷰파인더를 만들던 착한 손, 거역할 수 없는 현대사의 도도한 물결은 그를 원형질 그대로 놔두질 못한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순임의 박하사탕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누구의 용서도 받지 못한 채, 더구나 스스로는 더 용서할 수 없었기에 그 황폐하고 누런 물결의 한 가운데서 휩쓸리고 말았다. 어쩌면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우리네 40대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준엄히 묻고 잇는지도 모른다. 『너 어디 있었느냐?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헤아리지 못하는 기도는 무엇이더냐? 첫사랑의 증표로 소중히 간직해온 박하사탕이 군화에 짓밟힐 때 너는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그의 실수로 소녀가 죽었을 때 자괴감에 빠진 그에게 왜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들었더냐? 우리 나라 산천의 아름다운 이름 모를 들꽃을 필름에 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청년이 고문 경관이 되었을 때 왜 말리지 못했더냐?』
상처와 얼룩으로 오염된 우리의 현대사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에 그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것이다.
그를 면회온 순임과 만나지도 못한 채 헤어진 그 안타까운 장면은 그가 당연히 누리고 받았어야 할 구원의 손길과 그 사이의 간격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영화의 시작이자 현실의 시작이다. 거슬러간 20년의 시작, 거기엔 순수가 있고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복음적 시선은 다시 시작하는 삶에는 자비와 용서, 그리고 희망과 사랑의 포용이 우리를 부드럽게 감쌀 것이라고 위안을 주는 데서 찾아야 한다. 우리를 그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주님의 부르심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