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메~ 무서버라…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이라 불리는 해병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에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곳 포항 충무대 성당에 부임한 다음날 새벽, 아침기도 때의 일입니다.
새로운 임지에서의 다짐과 계획을 예수님께 보고(?)하고 있는데, 애국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조별 과업(아침 점호)이 시작된 것이지요. “하나, 둘,…열둘….” 인원점검을 하는 듯 하더니 잠시 후 이상한 군가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불바다’, ‘피투성이’와 같은 험악한 단어가 귀에 들어오는가 하면,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는 ‘라이라이차차차, 헤이빠빠리빠’ 같은 가사에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라는 선동적인 노랫말에 아침기도는 온통 분심으로 가득 차게 되었지요. ‘싸우면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 뭔 놈의 군가가 이렇게 투박하고 섬뜩 하다냐….’
아침기도를 마치고 사제관을 향해 오는데 저만치서 빨간 깃발을 들고 빨간색 운동복을 입고 고래고래 군가를 부르는 놈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소대별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마주 서서 서로 자기들 목소리가 더 크다고 싸움하듯 군가를 부르는 모습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자연스레 이런 기도가 흘러 나왔습니다.
‘예수님요…. 이런데서 어떻게 사나유?….’
내리막은 무섭습니다 ^^
하지만 귀신 잡는 해병이라고 씩씩하고 무서운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테랑 운전병이 전역을 앞두고 휴가를 가 있는 터라, 짝대기 두 개짜리 운전병과 산악 행군 위문을 가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산길이 연상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길을 가게 되었는데 영 속도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안전운행도 좋지만 조금 속력을 내도 좋겠는데…. 늦겠다. 이 정도의 내리막에서는 조금 속도를 내도 괜찮다.”고 재촉했더니 “네, 알겠습니다. 속력 높이겠습니다.”라고 씩씩한 대답이 따라왔습니다. 그런데도 속도가 여전히 20㎞인 겁니다. 계기판과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자니 “신부님~ 내리막길은 무서워서 빨리 못 가겠습니다.”라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자세히 보니 이마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겁니다. 초보 운전 시절에는 당연한 일이겠지요.^^
“푸하하. 귀신 잡는 해병이 내리막길이 무섭다고? 안전운행이 먼저지. 그래, 그래. 천천히 가면 되지 뭐.”
석 달이 지난 요즘도 “신부님 솔직히 아직도 내리막은 무섭습니다”라며 운전대를 잡는 녀석에게 “그래, 그래…. 안전이 최고다”라고 말하며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제 모습 멋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녀석 몰래 ‘에휴~ ’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유는 왜 일까요? ^^
소심한 군종 신부
부족한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숱하게 속을 썩으셨을 예수님의 속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예수님의 인내심은 갑갑한 그 상황들 속에서 더 빛을 발하셨을 것이고, 제자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에서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배웠겠지요.
군종신부로 살아가는 이 시간들…. 어설픔을 벗어던지는 갓 스물 남짓한 젊은이들의 눈에는 제가 예수님의 모습으로 보이겠지요. 감히 예수님과 비교할 수 없는 턱없이 모자란 신부이지만 예수님의 흉내라도 내야 되겠기에 갑갑함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상황들 속에서 한숨도, 불평도 대 놓고 못하고 ‘소심쟁이’로 지냅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를 배우려면 수 백년, 수 천년도 모자라겠지만 조금씩 닮아 가리라 다짐하면서….
아! 요즘도 아침마다 들리는 군가소리가 여전히 무섭냐구요? 물론 아니지요. 오히려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라며 악을 쓰는 녀석들의 군가소리에 기도를 담습니다. 모두들 삼구(三仇)전쟁에서 승리하여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되기를….
김준래 신부(군종교구 충무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