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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바미안 석불과 금가항 성당 / 김상재 편집부장

김상재 편집부장
입력일 2001-04-01 12:46:00 수정일 2001-04-01 12:46:00 발행일 2001-04-01 제 224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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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중부 힌두크시 산중의 옛 도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범연나국(梵衍那國)으로 기록돼 있는 바미안. 이곳은 바미안 강 북쪽 연안의 암벽에 뚫린 2만여개의 석굴원으로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높이 35m와 53m의 거대한 마애석불상은 세계 최대의 불상이다.

문화재 파괴

이 세계적 인류문화유산이 지난 3월 8~9일 아프가니스탄 집권 탈레반 군사정부에 의해 완전히 파괴돼 세계인들의 놀라움과 경악을 자아냈다.

이번 사태는 이슬람 집권 세력인 탈레반 정권의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가 이슬람 역사 이전의 모든 문화를 파괴하라는 지시가 발단이 됐다.

문화란 말은 「경작, 재배」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쿨뚜라(cultura)에서 유래한 말로 인간 스스로 삶의 풍요로움을 위해 경작하고 창조한 가치체계,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한 행동과 생활양식의 총체를 일컫는 말이다.

문화는 언어와 행동 또는 사용하는 물질처럼 외면적인 면과 규범이나 사상, 도덕과 같은 내면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시대의 문화 산물인 문화재는 당시의 조각술이나 건축술, 미술성만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제도와 사상, 생활 감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문화재의 파괴는 그 시대가 추구하고 경작하고자 했던 모든 정신세계의 파괴와 연결된다고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화신학자 폴 틸리히의 「종교란 문화의 실체」란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문화는 인간의 자기 가치를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정신활동이므로 인간의 근원을 찾아가려는 종교와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종교와 문화는 상징이라는 언어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데 십자가란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이해하듯이 상징은 인간의 본다는 행위를 통해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본질을 알아듣게 한다.

부처님의 자비를 이해하는데 있어 수많은 비유와 살명보다 자애로운 불상의 미소가 가슴에 더 깊게 와 닿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미안 석불의 파괴는 단순한 예술품의 파괴가 아니라 불교라는 종교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이 추구했던 진정한 인간해방 정신을 파괴한 독재행위요 회복될 수 없는 만행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상해 금가항성당이 철거를 앞두고 25일 마지막 미사를 봉헌했고 30일 이전에 철거한다고 한다.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혀질 쯤엔 벌써 철거됐을 지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있어 금가항성당은 단순한 건축 구조물만은 아니다.

금가항성당 철거

김대건 신부가 누구인가. 그토록 갈망하던 우리나라의 첫 사제이자 유일하게 치명 순교한 한국인 성직자이다.

이역만리서 온 외국인 성직자들의 순교 앞에서 선교사 없이 자생한 교회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게 해준 분이다.

그렇게도 사제를 갈망하여 가성직제도까지 만들었던 수많은 평신도들의 순교 앞에 오늘날 한국의 성직자들을 떳떳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분이다.

그러한 김대건 신부의 사제품의 의미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날 서품식에 참석해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조선인 신자 13명의 감회를 어떤 말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말없이 서있던 금가항성당 보다 정말 더 잘 설명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무관심 속에 금가항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바미안 석불과 금가항성당의 파괴의 원인은 다르지만 우리가 경작하고 재배해야할 마음의 밭 한구석이 황폐해진 것은 마찬가지다.

김상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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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재 편집부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