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작가와의 만남] 장편소설 '상도(商道)'펴낸 최인호씨

도현주 기자
입력일 2000-11-19 04:34:00 수정일 2000-11-19 04:34:00 발행일 2000-11-19 제 222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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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모자란 듯 자족하며 사는 것” 
옛 상인 통해 진정한 상인정신 강조
천주교박해 배경 … 신앙인의 면모 엿보여
최인호씨.
『기업가 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利)보다는 의(義)를 중시하며 정도(正道)의 길을 걸었던 상인의 표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왕국」「왕도의 비밀」등 여러 편의 굵직한 대하 소설을 통해 우리시대 최고의 재담꾼이란 평을 받아 온 최인호씨가 최근 5권 짜리 장편소설 「상도(商道)」(도서출판 여백)를 펴냈다. 3년여에 걸쳐 한국일보에 연재된 소설을 책으로 펴낸 「상도」는 200년 전 실재했던 의주 상인 임상옥의 생애를 통해 진정한 상인 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

『작가의 사명 중 하나가 역사 속의 숨겨진 인물을 부각시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최씨는 『이 소설을 통해 그 동안 정경유착, 부정부패 등 사도(邪道)에 의해 발전한 한국경제에 경종을 울리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본받을 만한 상인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상업이 가장 천대받던 조선시대 의주에서 비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임상옥은 뛰어난 사업 수완과 신의로 인삼무역의 독점권을 따내 중국상계를 굴복시키고 거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죽기 전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고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시킨 인물.

소설에서 임상옥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승 석숭 스님이 내려준 세가지 비결은 소설의 핵을 뚫고 있는 메시지다. 작가가 이 소설의 주제라고 밝힌 이 세 가지, 즉 스스로 죽을 각오를 해야만 결국 살 수 있다는 죽을 사(死), 부와 권력 명예는 솥의 세 발 처럼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솥 정(정), 가득 채우면 잔 속의 술이 다 사라지고 8할만 채워야 온전하다는 술잔 계영배(戒盈盃)를 작가는 『비단 기업인들의 상도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간직 해야 할 화두"라고 말한다. 『결국 인생에 있어 진정한 행복이란 만족이 아니라 모자란 듯 자족 하며 사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작가는 『상도(商道)는 가톨릭의 청부(靑富)사상과도 결부됩니다. 청빈 만큼 중요한 사상인 청부는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벌어서 투명하게 쓰며 투명하게 나누자는 뜻 이죠』

작가의 여느 작품과 마찬가지로 상도에서도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면모가 엿보인다. 주인공 임상옥이 사랑한 여인 송이는 천주교가 혹독한 박해를 받았던 그 당시 천주교인이 되어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대세를 주며 천주학을 전파하다가 순교하는 인물로 비춰지는 것. 최인호씨는 본지에 6.25 때 북한으로 피납된 가르멜수녀회 수녀들의 죽음의 행진을 소재로 한 「영혼의 새벽」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외손녀딸을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는 최씨는 『강제로 퇴출 당하는 느낌이 든다』며 웃으면서도 새로 구상중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금방 표정이 바뀐다.

그는 2년 후 유럽으로 떠나 성서의 내용을 더듬어가며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흥에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작품을 써 볼 생각이다. 첫사랑과 같은 신선한 느낌을 갖고 글을 쓰기 위해 한번도 성지순례를 가지 않았다는 그의 또 하나의 역작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도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