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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수필] 나의 자연 사랑법 / 박완서

입력일 2020-02-07 17:27:12 수정일 2020-02-07 17:27:12 발행일 1986-08-17 제 1518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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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앓는 소리 들리는 바캉스철엔

집에서 여름 보내는 것이 자연사랑법
여행을 좋아해서 두루 다녀본 편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나서 여름에 해수욕을 가 본적이 없다. 바다는 주로 겨울여행에서 하루쯤 머무는 걸 버릇처럼 지켜웠다. 겨울바다의 텅 비어있음과 쓸쓸함에는 가슴을 저미는 듯한 비애가 있다. 지난겨울에도 설악산을 가는 길에 경포대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단골인 횟집에 들르면 의례 경표 호와 동해가 함께 보이는 이층 방을 준다.

한쪽 창으로는 거세게 포효하는 바다가 보이고, 반대쪽창으로는 얼어붙은 호수가 보이는 방에서 광어와 오정어회를 안주로 마신소주 한잔은 작은 불꽃이었다. 꽁꽁언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훈훈하게 녹여주면서 시들해진 삶과 문학에의 정열이 다시 깨어날듯 짜릿한 예감이 왔다. 바닷가는 눈 닿는데 까지 허허롭게 비어있어서 태고적 같았지만 얼어붙은 호수에는 드문드문 사람이 보였다. 얼음을 깨고 낚시대를 드리운 사람들을 붉게 물들이면서 해가 지고 있었다. 무릎 꿇고 싶게 아름다운 일몰이었다.

산은 바다보다 골고루 다녀본 편이지만 정상을 정복했다던가하는 자랑거리는 거의 없다. 그냥 힘이 부칠 때까지만 올라갔다 내려오기도 하고 이름난 사찬이나 폭포가 있으면 그걸 목표로 삼기도 한다. 다녀본 상중에선 오대산을 가장 좋아해서 계절 가리지 않고 일 년에 한 번씩은 꼭 다녀온다. 올해는 그 산을 한 번도 안가 본 친구들 세 명과 함께 5월에 다녀왔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오대산을「우리산」이라고 소개했다. 그 산중에 땅 한 평도 내 돈 내고산적이 없건만 그렇게 부르니 기분이 좋았다. 나뿐아니라 우리식구들이 함께 좋아하는 산이어서 식구끼리도 오대산을 꼭「우리산」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좋아하는 산이라서 그런지 갈 때마다 조금씩 높이 올라가보다가 작년에는 제일 높은 비로봉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어찌나 힘들게 올랐는지 산이 나를 불쌍히 여겨 끌어올려주었지 정복했단 느낌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남에게 말할 때는 『내가 글쎄 이 나이에 오대산을 정복했지 뭡니까?』라고 자랑을 한다. 그때가 10월 초 순이었는데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단풍이 고와졌다. 아! 하는 외마디 탄성밖엔 아무 말도 안 나올 만큼 자지러 제게 예쁜 빛깔로 물든 단풍도 있었다.

여름에도 계곡이 좋은 산에서 사나흘 쉬고 오곤 했는데 작년부터는 바캉스철엔 집에서 쉬기로 하고 있다. 재작년 여름엔 지리산엘 갔었는데 도착한 게 밤이었다. 화엄사 못 미쳐 여관촌에 숙소를 잡고 나니, 계곡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어찌나 상쾌한지 그냥 자기가 아까웠다. 바람이라도 쐬고 오려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개울가로 가니 희끄무레하게 벤치가 보였다. 비어있는 벤치 쪽으로 가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그쪽에 못 앉으십니다.』라고 일러주었다. 바가지요금에 잔뜩 신경이 곤두선 나는 벤치에 앉은 값까지 받으려나 싶어 왜 못 앉느냐고 날카롭게 반문을 했다. 그 사람이 짖궂었던지 내 반문이 지나치게 신경질적이었던지, 대답이 어째 신통치가 않았다. 앉았다. 앉아보면 알게 될 거라는 식이었다. 앉아보았더니 지독한 지린내가 났다. 바로 발아래가 계곡물이고 밤인데도 거기서 사람들이 와글와글 끓고 있는데 어디서 그렇게 진한 지린내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화엄사를 거쳐 산을 오르다말고 내려왔다. 전문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어느 산보다도 많건만 그 사람들만 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만큼 구석구석 사람과 쓰레기 있다. 꼭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여먹어야 먹은 가 싶은 우리네 식성에 혐오감을 느꼈다. 집에서 먹는 것과 똑같이, 사람에 따라서는 더 잘 해먹으려니 흐르는 물은 시궁창이 되고 텐트주변은 쓰레기통이 될 수밖에. 피서객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린 것도 문제였다. 사람에 지친 산이 않는 소리를 내는 게 들리는듯했다.

산에서는 간단히 해먹고 음식찌끼나 그 밖의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자연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도덕이다.

그러나 그때 그 산은 그런 도덕을 각자가 철저히 지키는 것만으로는 회복될 것 같지 않게 깊이 않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사람이 생리적으로 내뿜는 숨결, 배설물만으로도 질식할 것 같은 상태였다. 바캉스철엔 집에 있을 것, 그게 내가 그때 마음깊이 터득한 자연보호법이다. 올해도 한사람이라도 바캉스인구를 줄이기 위해 나는 집에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

내 자연 사랑법(法)에 동조자가 늘길 은근히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