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소리 여행 /김승월

김승월(프란치스코·MBC 라디오본부 국장)
입력일 2012-03-20 04:22:00 수정일 2012-03-20 04:22:00 발행일 2012-03-25 제 278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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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나선 나그네는 자기 식으로 여행을 즐기기 마련이다. 어느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썼지만 나는 “아는 만큼 들린다”라고 말하곤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PD 생활을 근 30년 했다. 그중에서 10여 년은 녹음기 한 대 달랑 들쳐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며 취재 녹음하고, 그 소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덕분이다. 해서 내 무딘 청각으로 남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모든 장소에는 그 장소만의 소리가 있다. 방송에서는 이를 공간음(ambience 엠비언스)이라고 부른다. 계곡, 풀숲은 물론이고 빈 성당이나 지하실과 같은 곳에서도 독특한 소리가 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다. 하지만 대부분 무심코 스쳐 지나가니 못 듣는다. 라디오에서 특정 장소를 제대로 그려내려면 이 공간음을 반드시 녹음해서 들려줘야 한다.

소리를 집중해서 듣다보면 소리의 형체가 덩어리처럼 만져지기도 하고 소리의 움직임이 여울물처럼 손에 잡히기도 한다. 때로는 색다른 상상을 하게도 된다. 동굴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게 되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음침한 날에 대숲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는 마음을 휘적거리게도 만든다. 철교를 건너는 기차 소리는 마음을 어느 먼 곳으로 흘러가게도 한다. 파도 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합쳐지면 눈감고 있어도 아름다운 바다가 그대로 눈앞에 펼쳐진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따사로운 햇살에 부풀어 오른 땅, 물기를 내비치기 시작하는 나무들과 푸릇푸릇해진 산과 들. 곳곳에서 생명이 꿈틀거린다. 어느 곳에 가든지 이따금 멈춰 서서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눈감고 즐겨볼 일이다. 어떤 지점에서는 자연이 묘하게 배합한 소리가 당신의 영혼을 흔들 것이다.

김승월(프란치스코·MBC 라디오본부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