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사랑을 담다 /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3-03-21 17:11:21 수정일 2023-03-21 17:11:21 발행일 2023-03-26 제 3336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보좌신부로 있을 때,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가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신부님은 꿈이 뭐예요?”

막 사제가 되고 난 직후에 물었던 질문이라 가슴이 턱하고 막혔다. 나는 속으로 물었다. ‘난 꿈이 뭐지?’

사제라는 단어 앞에 이를 꾸며주는 수식어가 필요해 보였다. 걸으면서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나는 ‘사랑’이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말했다. “사랑이 많은 신부가 되고 싶어!”

그러자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참, 신부님다운 말씀이시네요.”

그날 저녁 그 아이의 질문이 나의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나는 어떤 사제가 되고 싶었던 걸까?

신학교 1학년 때 신부님들이나 선배들이 꼭 이런 질문을 했다.

“너는 어떤 사제가 되고 싶어?”

그러한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 신학생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저는 기도하는 사제가 되고 싶어요. 저는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제가 되고 싶어요.”

나도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 아니라, 어쩌면 남들이 내놓은 답을 마치 기계적으로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였을까? 대학원생이 되었을 때 그 질문이 내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나는 왜 사제가 되려고 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대학원 1학년 영성 심화의 해를 보내면서 나름대로 찾았던 것 같다. 성체조배를 하면서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참 아팠다. 그때 성체조배 중에 어떤 사제가 되고 싶은지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에 성소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던 것 같다.

병원 사목을 맡고 있는 지금, 그때의 질문들을 나는 현실 안에서 잘 녹여내고 있을까? 나는 내 현실 안에서 ‘사랑을 담고’ 있을까? 오늘 병원 미사를 봉헌하며 사랑을 담았나? 내 강론 준비에는 사랑이 있었을까? 나는 신자들의 요구에 사랑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며칠 전, 한 선배 신부님은 내게 단 한 명의 신자를 만날 때도 기도하고 만나라고 말씀해 주셨다. 허둥지둥 병자성사를 드리고, 환자 영성체를 가는 순간들이 있다. 그 선배 신부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환자들을 만나러 갈 때 기도하려고 한다. 물론 허겁지겁 갈 때도 있다. 그래도 미사를 봉헌하면서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제가 되기를 기도한다.

가난한 사람들, 환자들,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을 만날 때 ‘당신이 참 소중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게 내 사제직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내 서품 성구이기도 하다. 그분의 사랑을 담아 말해주고 싶다.

“네가 나의 눈에 값지고 소중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이사 43,4)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기자사진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