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
입력일 2023-03-14 수정일 2023-03-14 발행일 2023-03-19 제 333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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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 주연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잭 니콜슨이 좋아하는 여자와 어느 저녁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그때 여자는 예쁜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나왔는데, 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렇게 부탁한다. “나를 칭찬해 줘요.” 잭은 당황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칭찬을 시작한다.

“내 주치의, 정신과 의사가 말하길 나 같은 상태의 환자 50~60% 경우는 알약이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말해요. 근데 난 알약 엄청 싫어하거든요. 알약은, 아주 위험한 거예요. 난 그거 ‘증오’해요. 나는 ‘증오한다’는 말을 쓸 정도로 알약을 싫어해요. ‘증오한다’고요. 어쨌든, 제가 당신에게 해줄 칭찬은 이거예요. 내가 당신을 만난 그 다음 날 아침부터, 난 알약을 먹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자 여자 주인공이 의아해하며 묻는다. “난 그게 어떻게 나에 대한 칭찬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잭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나는 병원사목을 하기에 주로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만난다. 한번은 80대 식도암 여성분과 대화한 적이 있다. 처음에 나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식사는 잘 하세요? 잠은 잘 주무세요? 수술은 잘 되셨어요?”

대화가 조금 무르익으면, 환자들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 자매님은 아들 이야기를 꺼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30대 후반에 기숙사 사감을 했어. 그래서 아들을 혼자 하숙하게 했지. 그게 참 미안해. 돈은 주었지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어. 엄마 없이 10대 때 혼자 살아가야 했던 아들이 가여워.” 그러면서 당신 마음을 표현하신다. “나는 얼른 가고 싶어. 포기하고 싶어. 몸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 그런데 우리 아들이 날 보고 힘들어하니까, 포기할 수 없어. 내가 잘못되면 아들 가슴에 못 박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약도 먹고 싶지 않지만, 꾸역꾸역 먹어. 운동하기 싫어도 조금씩 걸어 다녀. 아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

아들을 사랑한 어머니는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하셨다. 그리고 그 어머니와의 만남은 내게도 사랑의 뭉클함을 선물했다. 실제 현실에서 사랑이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 대상을 충실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더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한다.

애정의 대상을 정하면 언제나 폭이 좁아지고 집중하게 된다. 갓난아기는 엄마의 깊은 수면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엄마의 휴가에 대한 생각도 접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대신 자신이 아팠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우리는 사랑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절제, 온유함, 희생을 배워간다. 사랑은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이용수 십자가의 요한 신부 ,병원사목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