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일요한담] 창조주께서 주신 가장 위대한 경력 / 장명숙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입력일 2023-02-07 수정일 2023-02-07 발행일 2023-02-12 제 333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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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아! 정말 나이를 먹었구나’를 절감하는 빈도수가 잦아집니다. 혼자 있을 때조차 예전 같지 않은 신체 움직임의 굼떠짐에서도, 대중 속에 섞여 평범한 일상을 살아낼 때도 나이가 들었음을 절감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것을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내야 하는 환경에서는 그 절감의 도가 더욱 심해집니다. 아니 정직하게 세속의 흐름에서 비껴가는, 좀 더 세련된 표현으로 패러다임의 흐름에서 밀려나는 취급을 받는 것 같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키오스크를 사용해 음식을 주문해야 할 때, 인터넷을 통해 서류 발급을 신청해야 할 때 등등…. 그럴 때는 난감함에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기분을 느낍니다.

집 바깥의 세상, 변화의 속도감이 무서워 집 안에만 칩거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만 있어도 TV를 틀거나 신문 등을 읽을 때면 또 어김없이 밀려나는 기분을 절감하게 됩니다. 특히 젊은층들이 자주 쓰는 축약어를 접할 때의 소외감이란…. 다행히 인터넷을 통해 축약어 뜻을 찾아볼 수 있으니, 그나마 ‘이 거대한 흐름을 어렵게 따라가고 있다’고 작은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위안을 비집고 때론 반감이 올라오는 축약어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경단녀!!! 제가 가장 반감을 느낀 축약어입니다. 처음 이 말을 접했을 때, 유치하게도 먹는 경단만 떠올렸습니다. 검색해보니 ‘결혼과 육아 탓으로 퇴사해 직장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궁금증이 해소되니 이젠 분노의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 분노의 근본이 뭘까? 제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나이 70살이 넘을 때까지 정말 운 좋게도 여러 직업을 가져 볼 수 있었습니다. 교수, 디자이너, 패션 컨설턴트, 패션 칼럼니스트, 문화 코디네이터 등에서 가장 최근엔 패션 유튜버라는 직함까지…. 하지만 이런 직함 이전에 인간 장명숙은 ‘두 아들의 엄마’라는 경력이 있습니다. 사회생활 하는 이유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엄마’ 경력만큼 위대한 경력이 있을까요? 제 이름 앞에 붙여졌던 많은 수식어는 그 일을 내려놓는 순간, 아무 의미 없어지고 ‘전직’ 이라는 수식어 정도로만 남겠지요. 하지만 두 아들의 엄마라는 경력은 눈을 감을 때까지 저를 설명하는 경력이 될 것입니다. 창조주가 제게 주셨던 두 아들, 그 두 아들의 엄마라는 거룩한 경력은 어떤 직함보다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만큼 가장 힘들었고 정성을 들인 경력이기도 합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질수록 ‘나 잘 살아왔나? 잘 살고 있나?’ 등을 자문자답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주님 앞에 나갈 때 사회적인 경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오히려 창조주의 뜻을 받들어 창조에 동참했던 제 경력을 주님께서는 더 어여삐 보시지 않을까요? 참된 신앙인의 자세! 가장 힘든 과제입니다. 마음 가난하게,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14세기 독일의 신비 영성신학자 마이스터 에카르트가 말했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지식과 소유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더 알려고도 더 가지려고도 하지않는…’이라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맞습니다!!! 그깟 축약어쯤 이해 못한들 주님 대전에 나아가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니 왜 이리 마음이 따듯해지고 든든해질까요! 이 따듯함을 주변에 경단녀가 될까봐 주저하는 젊은 엄마들에게 전해 주어야겠습니다. 힘껏 응원한다고….

장명숙 안젤라 메리치(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