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예루살렘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 참가기

이수연(체칠리아·AFI 국제운영위원)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2-0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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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땅에서 일치와 평화 기도하다
비록 땅은 장벽에 갈라졌지만
교회 경계 초월한 여성들 나눔
일치기도 의미 있게 만드는 힘

다양한 전례와 언어로 거행되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 일치기도회. 그리스도를 머리로, 우리는 그분의 지체임을 깨닫게 하는 축제의 자리다.

매년 1월 18~25일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를 바치는 일치주간이다. 유다교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 공존하는 성지 예루살렘에서도 매년 참된 일치를 위한 간절한 기도가 바쳐진다. 예루살렘 일치기도회 참관기를 전한다.

1월 21일 오후 5시 성묘교회에서 시작해 29일 오후 6시 막을 내린 기도회는 축제의 자리였다. 매일의 기도회는 라틴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그리스정교회와 성공회, 아르메니아교회와 루터교가 돌아가면서 주관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성직자들의 복장, 교회 내부와 전례 언어와 기도 방식이 모두 달라 볼거리도 풍부했다. 다양한 모습과 언어로 진행되는 기도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두가 당신 지체임을 깨닫게 했다. 다양한 모습 속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각자의 언어로 바치는 주님의 기도였고 독서와 복음을 통해 성경 말씀이 일치의 중심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기도회가 진행되는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연일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다. 기도회 막바지에 이른 사흘 동안 총격전과 시가전의 희생자들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소식들이 연이었다.

라말라와 예루살렘을 오가던 필자는 총기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나치 수용소로 들어가는 듯했다. 거대한 회색 건물과 철창문이 가로막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경계는 그 자체로 공포스럽다. 끝없이 이어진 장벽이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장벽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매일의 비극적 상황에 어떤 언급도 할 수 없었고, 다만 평화, 희망, 그리고 화해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유다교 국가인 이스라엘과 이슬람 영토인 팔레스타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물리적으로 작고 힘없는 공동체에 불과하다. 마지막 기도회에서 예수회의 한 신부는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으로 이렇게 힘주어 말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아주 작은 수지만 여전히 우리는 희망의 소리, 화해와 평화의 소리를 낼 수 있고 또 내야 합니다.”

그 희망의 빛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화해는 어디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화해와 치유 그리고 평화가 싹트는 것을 볼 수 없다면 일치를 위한 기도는 그저 매년 열리는 행사에 불과하다.

라말라에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한 그루 포도나무에 여러 개의 가지가 연결되어 있듯 함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서방교회의 가지이든 동방교회의 지체이든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이고 함께 일하며 함께 기념하면서 서로 돕는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었다.

라말라를 위주로 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지역교회들은 같은 날 주님 부활 대축일을 기념한다. 특히 라말라에는 라틴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그리스 가톨릭교회가 이웃하고 있는데 여성들은 교회의 경계를 초월하여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자녀들에게 신앙의 전통을 이어주기 위한 교육 방식을 공유한다. 핵심은 성경 말씀이므로 여성들 스스로 복음을 읽고 나눔을 한다. 모임은 갓 구운 전통 빵과 샐러드 그리고 차와 함께 하는 식사로 시작한다. 매주 변함없이 그렇게 이어온 삼십 년 이상의 시간은 일치의 기도를 유효하게 하는 증거들이다.

없는 사람과 나누고 아픈 사람을 방문하며, 특히 난민들을 더 세심하게 보살피는 이 여성들이야말로 매년 가부장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총대주교들이 집전하는 일치기도를 의미 있게 만드는 뿌리의 힘이다.

이수연(체칠리아·AFI 국제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