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간 시선] 낯설음과 익숙함 / 이대로 신부

이대로 레오 신부(가톨릭신문 기획주간),
입력일 2023-01-11 수정일 2023-01-11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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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취미는 ‘여행’이다. 나에게 여행은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다. 어린 시절 기차여행을 상상하며 이곳저곳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 하지만 학창시절은 얕은 주머니 사정, 이후에는 바쁜 시간 탓을 하며 충분히 만끽하진 못했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그 꿈을 이루어 주신 것인가? 신문사 소임을 맡게 되면서 정말 원 없이 기차를 타게 되었다. 여행의 매력이 낯설음에 대한 체험이라고 한다면 이제 기차는 익숙함이 되어버려 그 매력이 예전만 못하다. 기차역을 향한 발걸음이 생각의 실천이 아닌 습관적 반응이 된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말하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지만 항상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 즉, 낯설음(눈에 띔)이 찾아올 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특별하게 의식하지 않고 관계하게 되는 익숙함(배려함)과는 대조되는 상황이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너무나도 친숙한 사이에서는 상대와 습관적인 관계에 빠지게 된다. 서로에 대한 긴장감이라는 것이 없기에 깊은 사유가 발생하기 어렵다. 부부관계, 친구, 직장동료 관계 안에서 권태, 무성의, 사무적 관계가 그러할 것이다. 결국 자신을 살핌, 가꿈, 거듭남을 통해 서로에게 낯설음을 드러낼 수 있다면 더 건강한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참고)

사실 이 낯설음의 영역은 우리 신앙의 영역이기도 하다. 성경은 낯선 일들로 가득하다. 고향을 떠나는 아브라함, 홍해를 가로지르는 모세, 구세주의 탄생, 무엇보다 부활 사건. 이 모든 일들이 어찌 익숙한 일이겠는가? 그러한 사건을 체험한 이들은 곰곰이 생각할 것이다. 성모님도 그러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그리고 그들의 사유는 결심, 선택, 결단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신앙의 유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신앙생활에서의 익숙함을 떠올려 본다. 미사와 성사 생활에 있어서 익숙함이라면 앞선 논리에 따라 사유하지 않음과 연결된다. 사실 사제로서 미사 집전도 때론 너무 익숙해져서 습관적 반응처럼 느껴질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처럼 깊은 사유를 동반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공허하다. 신앙생활 안에서 성찰, 쇄신, 거듭남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지사이다.

어쩌면 신앙인에게 교회를 통해 경험하게 되는 삶은 신앙하지 않는 이들의 시선에는 어색하고 불편한 일들의 연속이다. 식사 전후 성호경을 긋고 주일을 지켜야 하고 죄를 고백하며 심지어 각박한 세상 안에서 애덕의 삶마저 살아야 한다. 그러니 낯설음으로 다가오는 일상의 다양한 불편, 불안, 불만의 시점을 신앙의 선조들처럼 복음적 사유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삶의 성화(聖化)일 것이다.

작심 3일. 결심한 것들이 무너지는 시기이다. 그것마저 익숙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를 응원한다. 몇 마디 덧붙인다. 한 해가 시작되는 이 시점 생각이 많다. 그만큼 낯선 일들이 많다는 반증 아닌가? 열악한 노동현장에서의 사고, 정쟁에 묻혀버리는 중요한 정치현안들, 영향력 있는 이들의 일탈, 무엇보다 일어나지 말아야할 참사. 필자는 이러한 것들이 의례 일어나는 익숙한 반복으로 받아들여지길 경계한다. 더욱 사유해야 할 때이다.

이대로 레오 신부(가톨릭신문 기획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