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자선을 실천하는 ‘선택’ / 정민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
입력일 2022-12-06 수정일 2022-12-07 발행일 2022-12-11 제 332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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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앤드류스의 「선택」(서남희 역, 북하우스, 2004)은 집 근처 도서관의 영미문학 서가에 꽂혀 있었습니다.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원제는 ‘the lost choice’ 인데 한글본은 그저, ‘선택’이어서였을까요? 저는 책장을 넘기다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책을 덮고서야 ‘lost’(잃어버린, 놓쳐버린)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저자는 전작,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와 마찬가지로, 이야기에 실존 위인을 동원합니다. 서기 281년 시나이반도를 배경으로 글은 시작됩니다. 누군가가 보물처럼 간직한, ‘잔’(盃)이 네 조각으로 쪼개집니다. 글은 후대에 전해진 네 조각의 행방을 추리하듯 쫓아갑니다. 1700여 년 동안 전해진 유물에 새겨진 아람어 문장이 핵심입니다. 글귀는, 물건을 소유한 위인들이 ‘실천을 선택’하는 동인(動因)이자 결과가 됩니다.

“네 손으로 사람들을 살리리라”는 1943년 폴란드에서 오스카 쉰들러가 문진(文鎭)으로 사용한 조각의 글귀입니다. 아우슈비츠의 유태인들 중 그가 ‘살린’ 유태인은 1098명에 달했습니다.(59쪽) 또 다른 조각은 미국의 땅콩박사 조지 워싱턴 카버에게 전해졌습니다. 후손들이 ‘먹을거리 돌’(101쪽)이라는 애칭으로 부른 조각의 문구는 “네 손으로 사람들을 먹이리라”였습니다. 흑인 노예로 태어나 갖은 고초를 겪은 카버는 땅콩의 다양한 활용법을 개발합니다. 결국 그는 수백만의 ‘백인’ 땅콩재배 농부를 ‘먹여 살린’ 위대한 농학자가 되었습니다.

“네 손으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리라”가 새겨진 세 번째 조각은 미국의 2대 대통령 존 애덤스를 거쳐, 아들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에게 전해집니다. 아버지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했습니다. 대통령 퇴임 후 하원의원이 된 아들은 노예제 반대투쟁의 선봉장이 됩니다. 마지막 조각은 미국의 대부호 가문의 A. G. 밴더빌트가 간직했습니다. 그는 1915년 독일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여객선에서 승객 1198명과 함께 유명을 달리합니다. 죽음 직전, 그는 구명정 탑승을 양보하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습니다. 수장(水葬)된 유물에는 “네 손으로 사람들을 구하리라”고 쓰여 있었다고 밝혀집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는 교훈을 남깁니다. 네 문장 모두 ‘신념’이자 ‘복음’입니다. 신념과 복음은 실천을 선택하게 합니다. 글에서, 카버 집안의 마지막 후손인 메이 메이 할머니는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변화를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어떤 변화를 만들지 결정하려면 선택을 해야 돼.”(163쪽)

대림 제3주일은 자선 주일입니다. 복음은,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라고 전합니다. 하지만 이어진 구절이 의미심장합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메이 메이 할머니의 말도 같습니다. “그 선택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고 있어. 그래서 좀처럼 자신의 삶에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려고 선택하질 않아.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것도 선택이지. 잃어버린 선택(lost choice)인 셈이야.” 주님을 의심하는 사람은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선에 인색하고 실천하지 않습니다. 말뿐인 자선은 껍데기입니다.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