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93.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519항)

입력일 2022-11-16 수정일 2022-11-16 발행일 2022-11-20 제 3319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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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침묵과 기도가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환히 비춘다
침묵은 기도의 조건이면서
기도 자체일만큼 중요한 요소
하느님 찾는 침묵과 기도 통해
세상에 필요한 변화 시작돼

신앙생활에서 침묵은 기도의 조건, 혹은 기도 그 자체다. 하느님을 찾는 우리의 침묵과 기도가 어둠 속에서도 세상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된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미카엘라: 신부님, 코로나19 이후 피정을 처음 오는데 스마트폰 없이 1박2일을 있어 보니 너무나 어색하고 힘들었어요. 그러나 침묵하면서 제 자신을 잘 살펴보고 하느님의 사랑도 깊이 묵상할 수 있었어요.

마리안나: 맞아요, 바쁘게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전혀 없었어요. 생각해 보니 맨날 스마트폰, 유튜브만 봤지 기도나 침묵은 하지 못했어요.

요셉피나: 가족과 이웃들,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도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었어요. 앞으로 이런 피정이나 침묵, 기도를 자주 해야겠어요.

이 신부: 피정을 통해 여러 결실들이 있으셨군요!

■ 침묵이 낯선 우리

침묵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까요. 간혹 신자분들과 기도나 침묵, 피정 기회를 갖습니다. 그런데 침묵을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바쁜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갖기 어려웠고, 코로나19 때문에 몇 년간 미사나 공동 기도, 피정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바쁜 현대인에게 스마트폰 없는 일상은 상상할 수 없듯 침묵은 낯설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서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침묵합니까? 하지만 잠시라도 침묵을 통해 기도와 성찰을 해 본 분들은 그 위력과 열매에 감탄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그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 드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 침묵 = 기도 = 하느님과 함께

신앙생활에서 침묵은 기도의 조건, 혹은 기도 그 자체이며 중요성은 절대적입니다. 「한국 가톨릭 대사전」은 명시합니다. “침묵은 모든 종교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로서 내면 세계와 신을 체험하기 위한 제사이고 기도와 정신 수련을 위한 필수 수단이다. 모든 전례 예식과 칠성사 예식에서 가장 거룩한 순간에는 침묵을 지킨다.” 토마스 머튼은 「고독 속의 명상」에서 “나의 구원은 듣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의 삶은 침묵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침묵이 곧 나의 구원이다”라고 하시지요.

필자도 그런 체험을 합니다. 침묵이 없는 것은 기도하지 않는 것이며 하느님 말씀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침묵이 결여된 지성과 판단은 쉽게 욕심과 욕망, 부정적 감정에 물들곤 합니다. 그런 속에서 나 자신과 이웃, 사회와 세상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 침묵과 기도의 힘

「간추린 사회교리」가 가장 강조하는 세 가지 주제는 관심, 사랑, 기도입니다.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관심에서 이 교리가 흘러나오고 있으며(3항), 이 교리로써 사랑의 문명이 형성되도록 힘써야 하고(575~583항), 그리스도인은 기도함으로써 이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519항) 그것은 침묵과 성찰,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가능합니다.

오늘날 우리를 질식시키고 사회를 메마르게 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반대로 황량한 사막에서도 꽃을 피우게 하고,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을 비추는 것은 또한 무엇입니까? 바로 하느님을 찾는 우리의 침묵과 기도입니다. 이웃과 세상을 향한 올바른 마음, 세상에 필요한 변화, 나아가 우리 삶과 공동체의 행복과 평화도 바로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교회는 기도를 통하여 평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한다. 기도는 마음을 열어 하느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할 뿐만 아니라, 존중과 이해, 존경과 사랑의 태도로 다른 이들을 만나게 해 준다.”(「간추린 사회교리」 519항)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