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거짓 정보’로 이득을 보는 자, 누구인가?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
입력일 2022-11-16 수정일 2022-11-16 발행일 2022-11-20 제 331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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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한무숙 문학상’ 수상 소설, 「친밀한 이방인」(정한아, 문학동네)은 2017년 작입니다. 다시 입소문을 탄 이유는 2022년 흥행 드라마 ‘안나’의 원작이기 때문입니다. ‘안나’는 모 OTT 플랫폼사와 제작진의 갈등으로 세간에 더 알려졌습니다. 플랫폼사가 8회의 드라마를 6회로 줄여 마찰을 일으켰지요. 콘텐츠 유통사일 뿐인 플랫폼사가 창작의 영역에 손대는 것은 원작의 제목처럼 형용모순입니다.

이야기는 소설가이자 화자(話者)인 내가 ‘나’를 찾는 신문광고를 보고 놀라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을 찾습니다.” 광고가 가리키는 소설은 ‘나’의 첫 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쓴 소설’을 자신의 것이라고 ‘거짓말’ 했던 이가 주인공 ‘안나’입니다. 그렇게 ‘나’의 관심 대상이 된 그녀는 “피아노 교사, 대학교수, 심지어 의사로 신분을 바꿔가면서 남자를 셋이나 갈아치우고 인생을 거짓으로 살아”(19쪽)갑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문광고를 낸 이. 그러니까 ‘안나’를 찾던 이들은 주인공의 장모와 부인입니다. 즉 그녀는 자신의 성(性) 마저 ‘남성’으로 바꾼, 그야말로 거짓말의 ‘달인’입니다. 소설은 ‘내’게 전해진 안나의 일기를 바탕으로 그 삶을 쫓아 재현하는 형식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소설 속 ‘나’의 현실은 안나의 것과 ‘거짓말처럼’ 유사합니다. 나의 삶 역시 위선과 위악으로 신산할 뿐더러, 거짓말 때문에 파경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안나에게 속았다’는 누군가는 말합니다. “그 아이와 나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 그런데 또 너무나 같다는 것. … 네, 그게 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156쪽) 작가는 어쩌면 이 말을 하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견줘 과장한다면 ‘거짓말의 평범성’입니다.

연중시기를 마치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 복음은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는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의 죄명은 ‘거짓말’이며 ‘허위조작 정보’입니다. 허위조작 정보는 의도를 가집니다. 결과적으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소설 끝 ‘반전’도 결국 안나의 거짓말로 이익을 얻는 자가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공모’한 범인도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허위 조작정보’를 말하기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遺作), 「제0호」(이세욱 역, 열린책들, 2018)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소설에서는 “신문도 거짓말을 한다”(에코의 책 61쪽)던가,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들을 만드는 것”(85쪽)이고, “우리는 그저 의혹을 널리 퍼뜨리기만 하면 됩니다. … 때가 되면 우리 발행인이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요”(196쪽) 라며 신문의 가치와 의미를 떨어뜨립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가짜 뉴스’라는 용어의 확산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측은 오히려 진실된 뉴스를 생산하는 ‘참 언론’입니다. ‘뉴스’에 ‘가짜’를 붙이면, 뉴스에도 가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용인되고 언론 전반의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허위 조작정보’로 이득을 보는 자와 피해를 입은 이를 잘 가려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민 안드레아(한국언론진흥재단 경영기획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