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성서 주간 특집] 우리는 성서 사도직을 살아갑니다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2-11-16 수정일 2022-11-16 발행일 2022-11-20 제 3319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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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고 행하면서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파한다’는 정신으로 성서 사도직 활동을 펼쳐온 가톨릭성서모임과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이 올해 50주년을 맞았다.

1972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와 대학생들의 소모임으로 출발한 성서모임은 참여 연령대에 따라 두 단체로 나눠졌다. 현재 두 단체는 운영 방식과 공부 주제가 다르지만, 평신도 말씀의 봉사자가 그룹 공부와 연수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는 점은 동일하다.

성서 주간을 맞이해 말씀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그 체험을 그룹 봉사와 연수 봉사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전하며 성서 사도직을 실천하는 각 단체의 봉사자를 만났다.

■가톨릭성서모임 최초 ‘전국 대표봉사자’ 박미라씨

“전달자 역할 넘어 삶으로 말씀 증거해야죠”

“키 작은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를 딛고 올라갔던 것처럼, 그룹원들이 말씀에 갈증을 느낄 때 저를 딛고 서서 주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박미라(마리아·60·서울 잠원동본당)씨는 지난달 가톨릭성서모임 전국 대표봉사자가 됐다. 지역 대표제로 운영되던 성서모임에 전국 대표가 생긴 것은 50년 역사에서 처음이다. 대표봉사자이기 전에 박씨는 최소 6개월씩 걸리는 그룹 공부를 30번 이끈 말씀의 봉사자다.

“오래 냉담을 했어요. 그러다 시집살이로 몸과 마음이 한없이 지쳤을 때 다시 성당 문을 두드렸죠. 다시 돌아온 제게 신부님께서 성서모임 참여를 제안하신 게 시작이었습니다.”

박씨는 성서모임에서 말씀에 비추어 삶을 돌아보며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게 됐다. 평소에는 그냥 글자일 뿐이던 성경 말씀이 기도와 묵상을 동반하자 마음 깊이 파고드는 체험도 했다. “성서모임에서의 모든 경험이 저를 봉사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도구로 쓰시려고 제 삶을 그토록 흔드셨구나 싶었죠.”

2003년부터 말씀 봉사를 시작한 박씨는 그룹원들과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깊이 있는 나눔을 하기 위해 쉼 없이 공부했다. 주 1회 그룹 공부를 위해 나머지 6일은 교육과 피정을 다녔다. 그는 “엄마가 아이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어하듯, 그룹원들에게 말씀을 꼭꼭 씹어 전하고 말씀에 맛들이게 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씨가 긴 시간 봉사해 온 힘은 매순간 체험한 ‘하느님의 도우심’이었다. “나눔 전에는 늘 긴장되는데, 막상 나눔을 시작하면 용기가 샘솟고, 제 입에 당신의 말씀을 담아주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저처럼 부족한 사람을 도구로 고르시고 부족함을 채우며 쓰신다는 걸 배웠죠.”

박씨는 봉사자로서 살아갈 때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말씀을 전하는 것과 삶으로 증거하는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봉사자이기 때문에 말씀을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담일 때도 있지만, 하느님과 그룹원들 앞에서 떳떳하고자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는 대표봉사자직도 삶에서 말씀을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과제를 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박씨는 성서모임에는 서로 말씀을 더 잘 살아내도록 밀어주고 이끌어 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나눔을 통해 그룹원들은 자기 삶을 보살펴 주신 하느님을 고백하고, 다른 사람의 묵상을 들으며 좋으신 하느님을 또 한 번 만납니다. 이러한 체험으로 봉사자도 그룹원도 말씀을 충실히 살아내려 노력하게 되죠.”

박씨는 “주님께서 이 행복한 공동체에 저를 불러주신 것이 큰 축복”이라며 “봉사를 마칠 때까지 주님께 순명하면서 말씀을 기쁘게 전하는 도구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9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정릉 본원에서 열린 가톨릭성서모임 50주년 행사 중 봉사자들과 박미라(왼쪽 두 번째)씨. 박미라씨 제공

■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최다 연수봉사자 윤민정씨

“청년들 변화 보고 나선 봉사 멈출 수 없었어요”

“모든 게 지나가도 말씀만은 영원히 남아 우리를 살게 한다는 믿음 덕분에 지금까지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에서 58번 연수 봉사한 윤민정(비아·43·서울 여의도동본당)씨는 자신이 긴 시간 봉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서모임의 꽃은 연수다. 연수는 성경 그룹 공부를 완성하고 말씀의 봉사자로 파견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3박4일간 진행하는 연수를 위해 봉사자들은 2개월여 동안 많은 시간과 기도를 봉헌하며 연수를 준비한다.

이 과정을 수십 차례 반복한 윤씨는 긴 연수 봉사의 원동력으로 ‘연수생들의 변화’를 꼽았다. “연수생들이 보통 굳은 얼굴로 연수를 시작하는데, 끝날 무렵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돼요. 함께 기도하고 웃고 우는 시간 속에서 느낀 하느님 사랑으로 변화되는 거죠. 하느님 현존 체험이 봉사를 멈출 수 없게 했어요.”

23년 전 윤씨도 딱딱한 얼굴의 연수생 중 하나였다. 입시에 실패해 스스로를 책망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던 스무 살의 윤씨는 주일학교 교사의 권유로 창세기 연수에 참여했다.

“어린 마음에 모든 것을 하느님 탓으로 돌렸는데, 그런 저조차도 감싸 안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연수에서 만났어요. 하느님은 제 부족한 모습까지도 그대로 사랑하고 계셨죠. 제가 느낀 그 사랑을 다른 이들도 느끼길 바라서 ‘당신께서 불러주시는 모든 일에 기쁘게 응답하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했습니다.”

청년성서모임은 교회에서 청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단체다. 윤씨는 말씀의 힘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세상적인 것에서 얻는 위로는 일시적이죠. 청년들은 성경 말씀만이 힘든 일상에서 마음을 붙잡아주고, 앞으로 나아갈 진짜 힘이 돼 준다고 말해요.”

연수에서 찬양 봉사를 자주 해온 윤씨는 다같이 하느님을 노래하며 서로의 뜨거운 마음을 공유하는 것도 연수생들이 말씀을 간직하고 사는데 큰 요소라고 했다. 청년들이 각자 자리로 돌아가 말씀 씨앗을 뿌리는 모습을 보는 일도 그에게는 봉사의 깊은 보람이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 윤씨가 평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다. 그는 성서 사도직을 살아갈 때 말씀의 선포만큼이나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이 저를 보고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다’고 느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느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모든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해야죠. 인간의 힘만으로는 어렵지만,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면 가능합니다.”

윤씨는 연수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말씀을 행복한 삶의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으로 간직하고 파견되길 바랐다. 그 마음으로 지난 23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그렇게 봉사자의 길을 걷겠다고 말한다.

윤민정씨(왼쪽 두 번째)가 연수봉사자들과 율동 찬양을 연습하고 있다. 윤민정씨 제공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