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평신도 주일 특집] 세상에서 복음 정신 실천하는 "나는 평신도”

입력일 2022-11-01 수정일 2022-11-01 발행일 2022-11-06 제 3317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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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공의회 「평신도교령」은 “평신도들은 그 활동으로 현세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언하며 인간 구원에 봉사한다”고 선언한다.(2항) 교회 안에서, 그리고 세상 속에서 묵묵히 복음의 정신을 실현하는 평신도들의 활동은 그 자체로 “나는 평신도다”라는 외침이다. 성당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고, 세상 속에서 자선을 실천하고, 또 교회 정신을 세상에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평신도들을 만났다.

정향숙씨.

■ 전례 꽃꽂이 봉사하는 정향숙씨

“나보다는 전례를 드러내는 삶 살고 싶어요”

본당 헌화회 20여 년 봉사활동

“교우들의 말씀 묵상 돕고파”

해설과 독서, 성가대, 복사 등 전례에 참여하는 봉사는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매주 빠짐없이 전례에 참여하면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 봉사가 있다. 바로 헌화회 봉사다. 헌화회원들이 봉사하는 시간은 주로 성당에 아무도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벌써 20여 년을 헌화회에서 봉사해온 정향숙(마리아·56·수원 오목천동본당)씨는 “헌화회원들은 사람이 없을 때 누가 한지 모르게 봉사한다”며 “그 시간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뽐내려는 생각으로 꽃꽂이를 하면 그날 꽃꽂이는 잘 안 돼요. 주님께 봉헌한다는 마음으로 꽃꽂이를 할 때 그 주 전례도 더 잘 묵상할 수 있고, 꽃꽂이 자체도 마음에 쏙 들게 꾸밀 수 있어요.”

정씨는 전례꽃에서 중요한 것은 “꽃의 화려함이 아니라 전례”라고 강조했다. 꽃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추구하는 일반 꽃꽂이와 달리, 전례꽃꽂이는 제대의 의미를 가리는 지나친 화려함을 피하고, 꽃의 색이나 모습을 통해 전례적 상징을 밝게 드러낸다. 미사에 참례하는 이들이 그 주의 전례를 느끼고 말씀을 묵상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정씨는 “신자분들이 꽃을 보고 전례를 느낄 수 있다 하시면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렇게 봉사할 수 있는 탈렌트가 있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헌화회 활동 중 꽃꽂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새벽꽃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꽃을 구해오고, 미사 사이에도 꽃의 상태를 살펴 다듬고 물을 줘야한다. 한 주간 제대를 장식한 꽃꽂이를 정리하는 것도 헌화회의 일이다. 정씨는 헌화회 외에도 구역·반장, 자모회, 성모회 등에서도 봉사해왔고, 지금은 수원교구 전례꽃꽂이연구회 교육이사로도 활동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정씨는 “저보다 열심히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이 많다”면서 “대단히 재주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 있도록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고 답했다. 특별히 주목 받거나 도드라지지는 않아도, ‘나’를 드러내기보다 전례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 정씨는 전례꽃꽂이의 이런 모습이 평신도와 닮았다고 느낀다.

“제대에 꾸며진 꽃들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전례를 돋보이게 해줘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 해요. 우리도 그런 것 아닐까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윤경일씨(오른쪽).

■ 해외 가난한 이 위해 나눔과 봉사 실천하는 윤경일씨

“나눔과 봉사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2004년 국제구호단체 설립

의료봉사 등 복음 실천 나서

“나눔과 봉사는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지요.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 고통을 덜어 주고자 자비를 베푸는 일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윤경일(아우구스티노·64·부산 좌동본당)씨는 2004년 국제구호단체 ‘한끼의 식사기금’을 설립해 지금까지 해외의 가난한 이들을 돕고 있다.

‘한끼의 식사기금’은 그 이름처럼 한 달에 한 끼 정도는 가난한 지구촌을 위해 나누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주로 개인들이 보내는 작은 후원으로 꾸려지는 이 기금은 지금까지 12개국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윤씨의 본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이전부터 윤씨는 국내 이주노동자를 위한 의료봉사를 시작으로 해외의료봉사에 이르기까지 줄곧 봉사를 실천해왔다. 봉사할 때마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라 질문하던 윤씨는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도록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생각에서 ‘한끼의 식사기금’ 설립을 결심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가지 일을 병행하려니 휴가를 비롯한 진료시간 외 일정은 ‘한끼의 식사기금’을 위해 쓰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구호업무에 따라오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윤씨는 “이 두 가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윤씨는 “환자를 진료하는 일과 국제구호관련 일을 하는 것은 내 삶의 두 축”이라면서 “그 속에서 인간으로서 영적으로 성장을 이루어 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힘을 준 것은 신앙이다. 윤씨는 “무엇보다 제가 허우적대면서 좌절에 빠졌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형제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라며 “말씀이 든든히 저를 지켜주고 있었기에 가난한 지구촌을 위한 일을 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신도로서 복음을 실천해나가고자 노력하는 윤씨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야고보서 2장 14~17절의 말씀이다. 윤씨는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여긴다”고 말했다.

“나눔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가진 것의 크고 작음과 관계없이 마음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나눔은 자신의 소유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더 풍성하게 해 줍니다.”

이승훈 기자

김영아 대표.

■ 난민 인권 위해 활동가로 나서는 김영아 대표

“이방인이 된 이들에게 평화가 깃들길 바라요”

난민 위한 비영리단체 운영

한국 정착 도우며 인권 활동

“약자를 품어주고 그들 편에 섰던 예수님을 따라 저도 난민들과 이웃으로, 친구로 만납니다.”

김영아 대표(마리아·40·광주 풍암운리본당)는 난민의 삶과 존엄 회복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Migration to Asia Peace)를 운영하며, 분쟁과 폭력으로 삶의 터전을 떠나온 난민들에게 울타리가 돼주고 있다.

MAP는 난민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 자립을 위한 교육을 지원한다. 난민의 인권 옹호를 위한 연대 활동과 시민 대상으로 난민을 향한 인식 개선 교육도 펼친다.

김 대표는 “다양한 구호 사업도 중요하지만, 난민의 삶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며 “난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넘어 내 삶 일부를 나눠준다는 생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유학 중에 만난 난민이 김 대표 마음에 난민 보호의 뜻을 품게 했고, 귀국 후 난민인권센터에서 봉사하며 수많은 난민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 불씨가 돼 이들의 상처 입은 삶을 돌보려 2015년 MAP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7년이 지난 지금, MAP를 20명이 넘는 자원활동가가 함께하는 활동적인 단체로 일궜다.

김 대표는 최근 이주민·난민 쉼터 ‘착한사마리아인의집’과 함께 난민 청년들을 위한 장학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난민 청년들에게 단순히 장학금을 주는 것을 넘어 미래를 꿈꿀 희망을 전하기 위해서다.

김 대표가 난민 활동가로 일하며 추구하는 다양성 존중, 공동체, 평화, 공동선이라는 가치는 모두 가톨릭의 가치와 동일하다. “난민들이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행복하게 살도록 제가 배운 신앙의 가치와 하느님의 사랑을 제 일 안에 녹여내려 노력합니다.”

김 대표는 주님께서 자신을 언제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기를 바라며 매일 ‘평화의 기도’를 바친다.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고향을 떠나 이방인이 된 이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은 하느님 나라가 되도록 신앙인으로서 작은 몫을 해내고 싶습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