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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10-25 수정일 2022-10-25 발행일 2022-10-30 제 331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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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사랑하세요.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십니다”
‘하느님 뜻’ 이해하지 못 하면
눈치 보는 신앙생활만 계속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면
먼저 나의 행복부터 추구해야

홍성남 신부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사이다가 따로 없다. 꽉 막힌 가슴을 톡 쏘는 영성으로 시원하게 속 풀어주는 말과 글로 교회 안팎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마태오) 신부. 최근 유튜브 ‘톡쏘는 영성심리’와 저서 「말해야 산다」로 또다시 주목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홍성남 신부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면 일단 ‘내’ 몸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한다”면서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진 박원희 기자

■ 알코올 중독자에서 영성상담가로

“상담이 제 인생을 바꿔줬죠. 저더러 심리전문가라 하는데 저는 학자가 아니고 심리학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는 수행자예요. 공부는 끝이 안 나요.”

75개국 5만여 명이 구독하는 유튜브 채널 운영자, 교회 안팎에서 찾는 인기 강사인 홍 신부지만, 홍 신부의 주 업무는 상담이다. 그것도 ‘신부’라는 신분 때문에 공공연하게 상담을 받기 어려운 사제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다. 홍 신부는 어떻게 사제가, 그리고 사제를 위한 상담가가 됐을까?

“강남에 있는 술집은 다 다녔고,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바닥에 내려갔었어요. 그런데 만약 바닥까지 안 내려갔으면 (영성심리) 공부를 안 했을 것 같아요.”

강렬한 체험으로 성소의 길에 올랐고 사제로서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사제 10년차에 위기가 왔다. 강론을 해도 신자들은 물론 자신도 변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미사 자체가 일처럼 지루하게 느껴졌다. 매일 술에서만 재미를 찾았고, 급기야 미사 중 성작을 잡은 손이 떨려왔다. 알코올 중독이었다. 사제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높은 다리에서 뛰어내리려고도 했다. 그때 상담을 만났다. 상담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고 상담을 공부하려 대학원까지 갔다.

홍 신부는 “대학원에 가서 내가 날 미워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를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홍 신부는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바닥에 내려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은총”이라면서 “그때 바닥에 내팽개쳐져서 바닥을 치고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박원희 기자

■ 사이비가 판을 치는 세상

“우리는 자기 인생에 궁금한 것에 답을 얻고 싶은 욕구가 있어요. 답을 빨리 얻고 싶은데, 답을 빨리 주는 사람이 점쟁이나 법사, 도사들이에요. 생각하는 것도, 고민도 싫으니까 빨리 답을 얻고 싶은 거죠.”

영성심리로 우리 사회와 종교를 들여다보면 어떨까. 홍 신부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었다”고 우려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현상으로 “사이비, 도사, 법사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는 것”을 들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유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이비나 독재자들에게 선동되기 쉽다는 것이다.

홍 신부는 대표적인 사례로 히틀러 추종자들을 짚었다. 홍 신부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하면서 “히틀러 추종자 중에 평범한 소시민이 많았다”며 “평범한 사람도 사유하지 않으면 악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홍 신부는 “사회적인 집단 선동이나 사이비 종교가 판치는 것 막으려면, 생각하고 읽고 물음을 던지는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신앙도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맹목적 믿음이 되고, 바로 변질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하느님 뜻’이라고 이야기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홍 신부는 “‘하느님 뜻’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사람은 신자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면서 “‘십일조가 믿음의 정도다’, ‘헌금 내는 시간이 기쁜 시간이다’, ‘그게 하느님 뜻이다’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하느님 뜻’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이다.

집필 작업 중인 홍성남 신부. 사진 이승훈 기자

■ ‘하느님 뜻’에 눈치 보는 신앙

“우리도 너무 ‘하느님 뜻’에 눈치 보는 신앙생활을 해요. 하루종일 하느님만 보고 하느님 눈치 보는 게 ‘하느님 뜻’이라고 가르치니, 성당에 가서도 십자가 보면서 ‘내가 저 양반 죽인 죄인이지’ 하고 눈치 보니까 무슨 기도를 할 수 있겠어요.”

홍 신부는 사이비만이 아니라 우리도 ‘하느님 뜻’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느님 뜻’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느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알려줬다. 바로 부모의 모습이다.

“애들이 놀 때는 엄마아빠 생각 안 해요. 그런다고 부모가 삐지겠어요? 놀다 말고 자꾸만 엄마아빠 쳐다보면 ‘아이가 문제 있는 거 아니야?’라고 오히려 불안하죠. 엄마아빠는 아이들끼리 재밌고 행복하게 놀길 바라요. 하느님 뜻도 다르지 않아요.”

그리고 성당을 ‘애들이 밖에서 놀다가 엄마아빠 만나러 오는 집’이라고 비유했다. 눈치 보고 주눅 드는 곳이 아니라 편하고 따듯한 곳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해성사를 강조했다. 고해성사는 성사로서 효력도 중요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털어놓기’로 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꺼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홍 신부는 “대부분 고해성사 시간이 너무 짧아 심리적 상처가 아물기 힘들다”며 “1명에 최소 1시간은 신부가 정성껏 들어줘야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고해소를 재판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신부님이 아버지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야단치는 계부 노릇을 하는 신부님들이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가 끝나고 신자 감소를 걱정하죠. 일부는 일리 있는데 다 맞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신자들이 성당에 왔을 때 마음의 치유를 느끼게 해줘야 해요. 사이비 종교는 한 명한테 몇 사람이 붙어서 케어해 주는데, 누가 듣기 싫은 야단 들으면서 주일 낭비하고 싶겠어요. 인간적으로도 난센스지요. 교회는 슈퍼컴퓨터인데, 쓰는 사람이 286컴퓨터처럼 쓰고 있어요.”

상담 중인 홍성남 신부.

■ ‘내’가 행복하기

홍 신부가 늘 강조하는 것은 ‘행복’이다. 그것도 ‘내 행복’이다. 성경 말씀처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려면 일단 ‘내’ 몸을 사랑해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홍 신부는 코로나19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그저 ‘윤리적 당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초기에 코로나가 확산된 지역들이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코로나가 돌고 돌아 전 세계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내’가 생존하려면 ‘내 몸’을 살리듯이 ‘이웃’도 살려야 한다는 깨우침이었다.

홍 신부는 “예수님은 뜬구름 잡는 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현실적인 분이셨다”며 “이걸 깨닫고 성경을 봤더니 성경 모든 말씀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법, 룰(Rule)이었고 성경이 ‘인류생존법’이었다”고 전했다.

“신자분들이 그만 자학하고, 그만 자기 비하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셨으면 해요. 다른 사람 행복이 우선이고 나를 미워하는 건 자학이지 신심이 아니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자식의 행복이에요.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행복한 거예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