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명예기자 단상] 게으른 기도 / 이소연

이소연 체칠리아 명예기자,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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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편은 아니다. 열심히 하시는 다른 분들과 비교해 보면, 나는 신심이 아주 깊거나 신앙이 굳건한 것 같지도 않다. 어떤 글에서처럼, 나에게 하느님은 늘 3등권 어디쯤에 머물러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반성하는 때도 많다. 아이의 시험기간에 학원 보강과 미사가 충돌하면, 학원을 보낸다. 경조사와 주일이 겹치면 경조사를 먼저 챙기는 것을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심지어 매일 바쳐야 하는 묵주기도가 겁이 나, 레지오마리애 가입을 권유하는 자매님들을 볼 때마다 줄행랑을 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생각 속에서, 내 입속에서 늘 하느님께 무언가를 ‘도와주세요’라고 중얼거린다는 점이다. 어떤 노래 가사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그렇게 기도에 게으른 나도,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쯤, 9일기도를 한다. 물론 특별히 청해야 할 것이 있을 때만! 이라는 부끄러운 이유가 있지만…. 그럴 때면, 아쉬울 때만 기도를 한다는 찔리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주변의 환경과 나의 최선에도 답을 얻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그럴 때 나는 9일기도 책을 편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된 습관 아닌 습관인 것 같은데, 그때부터 쓰던 파란색 표지의 9일기도 책은 낱장이 흩어질 정도로 낡았다. 새로 장만하는 것이 뭘 그리 힘들다고 여태 그 책을 쓰는지는, 나의 기도 게으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9일기도 열심히 하는 중에는 이 기도를 마치면 기도책을 새로 장만해야지 싶다가, 마치고 나면 또 까맣게 잊어버리니까.

9일기도를 시작하면, 집에 마련해둔 고상 자리에 초를 켜고, 책을 펴고, 그날 가장 손에 잘 붙는 묵주를 들고 앉는다. 9일기도는 성모님께 나의 기도를 함께 올려주십사 청하는 기도라고 배웠지만, 나의 기도의 시작은 늘 ‘하느님’으로 시작한다. 패싱(?)하는 거냐고 성모님께서 섭섭해 하셔도, 그 마음까지 다 이해해주실 것이라고 혼자 굳건히 믿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성모님의 걸음을 함께 걸으며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닦는다. 성모님께서 함께 걸어주신다고 느끼는 것은 더없는 의지가 되고, 또 하기 싫을 때 “계속하자”고 이끌어줄 리더가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그래서일까, 놀랍게도 9일기도에 실은 나의 간절함을 하느님께서는 단 한 번도 모른 척하신 적이 없었다. 마치 “그래도 난, 널 늘 기억하고 있단다”라고 하시는 것처럼.

며칠 전, 한 수녀님께서 알려주신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바치는 9일기도’를 짧게 9일 동안 했다. 그 책을 건네주신 수녀님은, “9일을 채우기도 전에, 성모님께서 매듭 다 풀어주셔요”라는 말도 함께 덧붙여 주셨는데, 나의 매듭은 9일을 꽉 채우고 나서 풀렸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늘 기도에 게으른 나에게, 성모님은 그래도 하라고~ ‘내가 열심히 함께 걷고 있으니, 잊지만 말라’고 하시는 것 같아, 남들 모르게 혼자서 숙연해졌다.

나는 오늘도 매 순간 ‘하느님~ 어쩌고 저쩌고~’를 중얼거린다. 기도에 게으른 나지만, 그 게으름조차 내 신앙의 일부라 아껴주시는 그분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내 기도의 끝에는 늘 하느님이 계시다

이소연 체칠리아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