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89. 십계명 (「가톨릭교회 교리서」 2056~2082항)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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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을 지키는 삶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클수록
주님 사랑에 더 감사하게 되고
계명 지키는 거룩한 삶 살게 돼

야콥 요르단스 ‘바리사이 가운데 그리스도’.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려고 십계명을 지키려 했기에 결국엔 십계명을 지킬 수 없었다.

어느 흉흉한 마을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같은 마을에 사는 불만 가득한 십 대 몇 명이 모여 그 노인을 골려주기로 작정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노인의 집 앞을 지나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은 그들이 오기를 기다려 마당에 나와 각각 5파운드씩 나눠주면서 앞으로도 매일 돈을 줄 테니 계속 욕을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아이들은 일단 돈을 받고 욕을 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는 약간 달랐습니다. 노인은 아이들에게 돈이 별로 없다며 1파운드만 주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계속 욕을 해댔습니다. 세 번째 주가 되자 노인은 아이들에게 돈이 다 떨어져 20펜스밖에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너무 적은 금액에 모욕감을 느낀 아이들은 욕을 중단해버렸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하는 일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보상이 줄거나 사라지면 하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곧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요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2067) “이를 행하지 않으면 구원은 없습니다.”(2070) 그러나 구원을 바라며 하는 행위는 오래 갈 수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보상에 종속됩니다.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 사제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려고 십계명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한계에 부딪혀 결국엔 십계명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오히려 ‘이미 받은 보상에 대한 응답’이어야 합니다. “윤리적인 삶은 주도적인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2062) 하느님은 십계명을 알려주실 때 그 첫 마디에서 먼저 당신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업적을 선포하십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탈출 20,2; 신명 5,6)

천국에 가기 위해 십계명을 지키려 하면 어느새 지쳐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도는 구약에서 다 실패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먼저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 덕분에 일어나는 감사의 마음에 하느님 뜻을 실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열매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풍요로워지는 삶의 거룩함입니다.”(2074) 곧 계명을 지키는 삶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수액을 받았습니다. 선한 행위 때문이 아니라 성령으로 구원되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삶은 구원 이후에 오는 열매입니다. 아기는 부모의 자녀임을 믿은 이후에 부모처럼 되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십계명을 지키는 삶은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배”(2062)입니다.

따라서 더 윤리적인 삶을 살려면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고 더 큰 감사를 지닐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요한 6,29) 그리스도를 더 믿을수록 하느님 사랑에 더 감사하게 되고 그만큼 더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덕분으로 내가 죽고 ‘이미’ 그리스도가 되어 하느님 자녀가 되었습니다.(갈라 2,20-21 참조) 이 믿음으로 이웃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구원된 자녀가 되었더라도 감사의 마음이 먼저 샘솟지 않으면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