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20)대구 관덕정순교기념관과 성 유스티노 신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10-19 수정일 2022-10-19 발행일 2022-10-23 제 3315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도심 한가운데 우뚝 선 기와지붕의 순교지

이윤일 성인 등 17명 순교한 곳
옛 건물 그대로 살려 기념관 건축
인근에 성모당·유스티노관 있어

관덕정순교기념관 외부 전경.

일 년 사계절 중에서 특히 가을은 더욱 풍요롭고 눈부시게 다가온다. 이 좋은 계절에 주변을 둘러보면 그동안 지나쳤던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교회와 관련된 성지나 순교 사적지, 순례지와 성당이 많다. 시간을 내어 순례할 수 있지만 오가는 길에 뜻 깊은 장소를 만나면 잠시 들러 기도 바칠 수 있다. 아름다운 팔공산과 금호강이 흐르는 대구의 성지와 순례지들. 계산주교좌성당, 관덕정순교기념관,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성모당, 성직자 묘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 등이 대구 중구에 모여 있다.

영남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들이 치명한 관덕정순교자기념관은 대구 중심부에 있다. 기념관 외벽에 순교자들의 모습을 새긴 대형 석재 부조가 있고, 입구에는 성 이윤일(요한, 1823~1867)의 동상과 순교복자기념비가 있다. 관덕정 순교 기념관은 삭막한 도시에서 신앙의 등대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해 준다.

원래 관덕정순교기념관이 자리 잡은 터는 1749년(영조 25년)에 건립된 관덕당(觀德堂)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관덕당의 넓은 마당은 조선시대 무과 시험을 치루고 군사 훈련이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1815년 을해박해 때 7명, 1839년 기해박해 때 3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 성인을 비롯한 7명이 순교하였다.

대구대교구는 이처럼 뜻 깊은 관덕당 자리에서 순교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1991년 관덕정순교기념관을 개관하였다. 원래 있었던 관덕당 건물 형태를 염두에 두고 기념관을 건축하여 박해 시기의 증인이었던 옛 건물을 되살렸다. 지하층에는 기념성당과 메모리얼홀, 성인들의 유해 현시실이 있으며, 1층에는 로비와 사무실 및 쉼터가 있다.

2층 전시실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경상도 산골로 숨어 들어오면서 경상도 지역 교우촌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곳에선 관덕당의 변화와 이곳 순교자들의 삶과 신앙에 관해 살펴볼 수 있다.

3층 전시실에서는 이윤일 순교성인의 삶과 신앙의 여정을 소개한다. 그는 고향 충청도 홍주를 떠나 상주 갈골을 거쳐 문경 여우목에 정착한 후 여러 가정을 방문하며 전교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박해 상황에서도 용감히 신앙을 전파하다가 체포되어 문경 관아에서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후, 병인박해 때 관덕당에서 순교하였다.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했던 이윤일 성인은 대구대교구 주보인 루르드의 성모에 이어서 제2주보성인으로 선포되었으며, 유해는 기념관 성당의 제대에 안치되었다.

관덕정순교기념관 옥상 전망대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이곳에서 순교한 우리 신앙 선조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망루 형태의 기념관 지붕에는 화려한 단청이 장식되어 순례자들의 눈길을 끈다. 이곳 단청에서는 사찰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들이 있다. 예수님과 십자가, 비둘기와 물고기, 포도나무와 백합, 초와 구름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상징물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기념관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단청 그림은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며 생명을 잃었지만, 이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유스티노관’ 외부 전경.

순교기념관과 가까운 곳에 대구대교구청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대구 가톨릭대학교 유스티노 캠퍼스도 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914년에 완성된 성 유스티노 신학교 건물(대구 문화재 자료 제23호)이다. 서울 명동대성당을 지을 때 참여한 프와넬 신부(Poisnel, Victor Louis, 1885~1925, 파리 외방 전교회)가 설계한 신학교는 대구대교구 초대 교구장인 드망즈 주교(Demange, Florian, 플로리아노,1875~1938, 파리 외방 전교회)가 중국인 벽돌공을 동원하여 완성한 것으로 서구의 근대 건축양식과 벽돌 제조기술을 대구에 소개한 건물이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혼합한 ㄷ자형 건물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가운데 부분만 남아 있다. 비록 온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건물을 ‘성 유스티노 신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관’ 등이 들어선 ‘유스티노관’으로 사용 중이다. 1층에는 고풍스런 성당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유스티노홀과 옴니아홀(100주년 기념관)이 있다. 2층에는 드망즈홀(설립자관)과 앗숨홀(문서관)이 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은 직후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와서 헌신한 드망즈 주교와 그의 유품을 보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갖게 된다.

‘유스티노관’ 성당.

이처럼 뜻 깊은 유스티노 신학교는 박물관으로 거듭 새롭게 태어나 우리가 잊었던 지난날의 교회 역사를 속삭여 준다. 오래된 교회 건물을 기념관이나 박물관 등 새로운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유스티노 신학교를 감싸며 양 옆과 뒤편에 건립된 건물은 대구 가톨릭신학대학으로 사용 중이다. 이곳의 신학생들은 매일 유스티노 신학교를 바라보면서 앞서 걸었던 선교사들과 사제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성소를 키워나가고 있다.

유스티노관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면 아름다운 정원에 자리 잡은 성모당(대구시 유형 문화재 제29호)이 나온다. 드망즈 주교는 1911년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대구대교구 주보성인으로 정하고 교구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도움을 청하며 성모당 건립을 약속했다. 1918년 10월 성모당을 축성한 이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도 공간과 휴식처로 사랑을 받는다.

교구청 지역에는 1915년에 조성된 성직자묘지가 있어서 한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가 하느님 아버지 품에 안긴 사제들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 있다. 드망즈 주교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과 교구 성직자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이다. 묘지 입구에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는 글이 있다. 또한 인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이 있다. 1915년에 대구에 최초로 설립된 수녀원으로, 이곳 수녀들은 고아들을 돌보고 성 요셉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면서 사랑을 실천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사랑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른다.

10월 묵주기도 성월, 대구 성모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순례하며 기도를 바치고 있다. 거친 손마디로 묵주알을 돌리는 순박한 신자들을 보면서 그들의 기도가 성모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기를 청하였다. 프랑스 산골의 루르드에 있는 성모 동굴을 닮은 성모당에는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나무 사이로 내리비치고 있었다.

성모당에 모여 기도하는 신자들.

■ 관덕정순교기념관

주소: 대구시 중구 관덕정길 11, 전화: 053-254-0151

미사: 화·목 오전 10시 / 수·금 오후 3시 / 토 오후 5시

관람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월요일 휴관)

■ 성 유스티노 신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관

주소: 대구시 중구 명륜로 12길 47, 전화: 053-660-5100

관람시간: 동계 오전 10시~오후 5시

하계 오전 9시~오후 5시(자유 관람)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