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 (19)나주 순교자 기념성당과 까리따스 수녀회 기념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입력일 2022-10-05 수정일 2022-10-05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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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마른 땅 적시듯 척박한 신앙 불모지에 순교 영성이 흘렀다
성당과 묘원·기념관 하나로 어우러져
교회의 야외 박물관처럼 보이는 곳 
옛 건물과 유물 등 신앙 유산 가득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내부 .

전남 중서부에 있는 나주(羅州)시 주변으로 아름다운 영산강이 흐르며, 강가에는 풍요로운 나주평야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순교자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듯이 전남과 나주 지역에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의 자취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상당수의 신자들이 순교했으리라 짐작하지만 알려진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이춘화(베드로, 1806~1839), 병인박해 때 순교한 강영원(바오로, 1822~1872), 유치성(안드레아, 1825~1872), 유문보(바오로, 1813?~1872)이다.

한적한 언덕에 있는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은 이곳 순교자들과 신자들을 위해 세워졌다. 1935년에 초대 나주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현 하롤드 신부(Henry W. Harold, 1909~1976, 1954년 제5대 광주대교구장으로 임명)가 성당을 건립하였다. 그는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탄생하여 1932년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사제로 서품받고 1933년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1935년부터 1942년까지 나주에서 사목하면서 선교와 복지, 해성학교를 설립하며 헌신하였다. 나주성당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가 우리나라에서 건립한 첫 번째 성당으로, 내부는 일자형이며 유리창은 한지 유리화로 장식되어 은은한 느낌을 준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기념관.

나주성당 옆에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 등으로 사용했던 기와집이 그대로 있다. 까리따스(Caritas)는 라틴어로 ‘자비’, ‘사랑’이란 뜻으로 까리따스 수녀들은 예수님 사랑에 자신을 물들여 살면서 그 사랑을 증거하고 전하려는 사랑의 사도들이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는 1937년 일본 미야자키에서 살레시오회 선교사 가경자 빈첸시오 치마티 몬시뇰(1879~1965, 이탈리아)과 안토니오 가볼리 신부(1888~1972, 이탈리아)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기와집은 1956년 당시 광주대교구장이었던 현 하롤드 대주교의 요청으로 우리나라에 진출한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1959년까지 수녀원으로 사용하다가 본원이 광주 학동으로 이전하면서 건물만 남았다.

2004년 광주대교구는 한국교회에서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선교 초기에 남겼던 발자취를 돌아보며 수녀회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도록 본원을 복원하였다. 수녀원 건물은 지금 작은 역사기념관으로 꾸며졌으며, 이곳에선 현재 역사 사진과 기도서, 성물과 유물, 생활용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수녀회 지원자들이 구호물자인 옥수수 식량 자루로 만들어 입었던 검소한 작업복도 전시되어 있다. 마당에는 초창기 수녀들이 사용하던 우물도 마르지 않아 지금도 화단과 텃밭을 가꾸는 데 사용하고 있다.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기념관 전시실.

까리따스 수녀회 역사기념관에서 조금 올라가면 네 명의 순교자들을 기리는 무덤 동굴 형태의 순교자 기념경당이 있으며 안에서 돌무덤과 죽음을 상징하는 관 모양의 제대를 볼 수 있다. 제단 뒤의 열린 하늘은 순교자들이 죽음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부활하여 하느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성당 언덕에는 순교자 묘원이 있는데 이 지역의 순교자 네 분을 기리는 가묘이다. 오늘날까지 네 순교자의 무덤을 찾을 수 없어 이곳에 가묘를 조성한 것이다. 순교자 묘원 앞의 누운 비석에는 “소중한 신앙의 유산은 ‘오늘 나를’ 통하여 증거돼야 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순교자 묘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주본당에서 사목했던 현 하롤드 대주교의 흉상과 기념관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 선교사제로 와서 광주대교구 안에 많은 본당을 설립하였으며, 여러 수도회를 초청하여 교육과 의료, 복지와 영성 생활의 증진을 위해 헌신하였다. 원래 이 건물은 1934년에 건립한 서양식 벽돌조 사제관이었는데, 내부를 손질하여 2004년에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기념관에서는 현 대주교의 사진과 제구류, 유물과 유품을 전시 중이다.

성당 마당에는 무학당(武學堂, 현 나주초등학교 자리) 형태를 철제로 만든 조형물이 있다. 무학당은 나주 진영 안에 있던 조선군 군사 훈련장이었는데, 광주대교구 내 유일한 순교터로 알려져 있다. 순교의 증인 역할을 한 무학당의 주춧돌을 가져와 혹독한 박해 때를 떠올리도록 도와준다.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주변은 전체가 교회의 야외 기념관이나 박물관처럼 보인다. 순교자 기념성당과 경당, 까리따스 수녀회 역사기념관,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 순교자 묘원, 순교터에 있던 무학당 조형물, 성당 곳곳에 있는 순교자상과 성상들이 이런 느낌을 준다.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을 순례하는 동안 가을비가 내리면서 성지 곳곳을 적셔주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신앙 선조들과 순교자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머나먼 타국에서 온 선교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메마른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흘린 고귀한 피땀처럼 보였다.

■ 나주 순교자 기념성당

주소: 전남 나주시 박정길 3

전화: 061-334-2123

미사: 주일 오전 8시·10시 / 월 오전 6시 / 화·목 오후 7시30분 / 수·금 오전 10시 / 토 오후 5시·7시(계절에 따라 미사 시간 변경 가능. 사무실에 문의)

■ 까리따스 수녀회 역사기념관

성당 개방 시간에 자유 관람 가능

■ 현 하롤드 대주교 기념관

사전에 성당 사무실에 예약시 관람 가능(매주 월요일 휴관)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