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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 성월 특집] 묵주 작가에게 듣는 묵주 이야기

염지유 기자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5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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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앤마리아’ 김유진 나무묵주 작가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성모님의 밧줄”
묵주기도 통해 주님 응답 체험
‘치유의 나무’ 유창목 재료 사용
소명 의식으로 신앙 기쁨 알려


‘모리스작업실’ 강다현 칠보묵주 작가
“하느님과 연결되는 가장 아름다운 사슬”
유학생활 버팀목 된 묵주기도
전통 금속공예로 묵주 제작
은총 청하며 주님 사랑 느껴

묵주알을 굴리며 성모님께 아름다운 꽃다발을 바치는 묵주기도 성월. 신자들은 저마다 묵주를 들고 묵주기도 신비를 묵상하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한다. 우리의 묵주기도를 이끌어주는 도구인 ‘묵주’를 만드는 작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구슬을 엮을까. 묵주기도를 사랑하고, 그 사랑만큼 정성스럽게 묵주를 만드는 이들에게 묵주기도 이야기와 작가로서 소명을 들어본다.

김유진 작가가 나무묵주알을 깎고 있다.

김 작가가 만든 나무묵주. 김유진 작가 제공

김 작가가 만든 나무묵주. 김유진 작가 제공

■ ‘로즈앤마리아’ 김유진 나무묵주 작가

“삶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안갯길 같아요. 묵주기도는 성모님께서 그런 인생길을 걷는 우리에게 건네주시는 밧줄이라고 생각해요. 그 밧줄을 잡고 가면 악의 세력에 굴하지 않고, 주님 계신 곳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죠.”

김유진 작가(클라우디아·52·수원 동판교본당)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어려운 시기를 버틸 힘을 얻고, 주님께서는 각자에게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묵주기도 신심이 깊어지면서 김 작가는 평생 지니고 기도할 수 있는 좋은 묵주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오래될수록 가치 있고 손때가 묻을수록 빛나는 재료는 무엇일까. ‘나무’였다.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해 나무를 다뤄본 그는 7년 전 신자 조각가 모임인 ‘가톨릭목공예’에서 묵주알 깎는 법을 배웠다. “나무묵주를 만들며 박해 시절 한 알 한 알 정성으로 나무 구슬을 깎고 엮었을 순교자들의 절절한 마음을 떠올리게 됐어요. 그 마음을 본받으며 기도하려고 묵주를 더 많이 만들기 시작했죠.”

김 작가는 치유의 나무라고 불리는 유창목으로 묵주를 만든다. 단단하고 네모난 나무 조각을 둥근 알 모양으로 만들려면 조각도를 수백 번 움직여야 한다. 온종일 손이 얼얼하게 깎아도 10알 남짓이다. 5단 묵주에 들어갈 구슬 59개를 깎는 것은 그만큼 고된 작업이다. 깎은 구슬을 전통매듭으로 단단히 묶는 작업까지 끝내야 비로소 완성되는 묵주. 쉼 없이 묵주를 깎고 엮는 김 작가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 배겨있다.

김 작가가 묵주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묵주기도를 통해 얻는 신앙의 기쁨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과거 긴 시간 냉담했던 그는 ‘잘 모르니까 믿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교리서를 펼쳤다. 교회 가르침을 제대로 익히며 신앙의 맛을 느낀 후 가톨릭신자로 사는 기쁨을 많은 이에게 전하고자 2013년 ‘가톨릭! 저는 자랑스러운 천주교인입니다’라는 블로그도 시작했다. 지금껏 올린 교리 설명, 성인 소개, 성경 묵상글만 3000건이 넘는다.

묵주를 만드는 일도 연장선상이다. “항상 성모님께 ‘기도하고 싶은 묵주를 만들게 해달라’고 청하면서 구슬을 깎아요. 자꾸 만져보고 싶은 묵주를 만들어서 한 사람이라도 더 묵주기도의 크나큰 은총을 느끼면 좋겠어요. 그게 제가 묵주를 만드는 이유이고 원동력이에요.”

김 작가는 2년 전 암 수술을 받고 체력이 저하돼 묵주 작업이 예전보다는 힘들다. 하지만 주님께서 주신 손으로 소중한 기도 도구를 만든다는 소명 의식이 그의 마음을 충만하게 한다.

“제가 만든 나무묵주를 훗날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분들과 사는 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세상을 떠날 때 관 속에 넣어 가겠다고 하는 분들을 떠올리면 저절로 힘이 납니다.” 힘이 닿을 때까지 묵주 보급에 힘쓰고 싶다는 김 작가는 오늘도 묵묵히 나무알을 깎는다.

강다현 작가가 칠보묵주에 엮을 칠보꽃을 만들고 있다. 강다현 작가 제공

강 작가가 만든 칠보묵주. 강다현 작가 제공

강 작가가 만든 칠보묵주. 강다현 작가 제공

■ ‘모리스작업실’ 강다현 칠보묵주 작가

“묵주는 우리를 하느님과 묶어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슬이에요.”

강다현 작가(베로니카·40·부산 석포본당)는 복자 바르톨로 롱고(1841~1926)가 남긴 이 말을 늘 마음에 새기고 묵주를 엮는다. 강 작가는 일본 오사카에서 9년 동안 금속 공예를 배웠다. 유학을 떠나기 직전 세례받고, 작은 성모상과 묵주기도서만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유학하는 동안 강 작가의 54일기도의 바퀴는 멈춘 적이 없었다. 묵주기도는 힘든 타지 생활을 견디게 하는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그는 기도 속에서 커지는 성모님을 향한 사랑을 유학 내내 작품으로 표현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진로 고민으로 힘들 때도 강 작가는 성모님께 길을 알려 달라고 기도드렸다. 강 작가 어머니가 세례받던 날이었다. “기도 중에 칠보공예로 성물을 만들라는 목소리를 들었어요. 믿기 어려운 음성이었는데, 그 말이 자꾸 마음속에 맴돌았어요.”

칠보는 금속 재료에 유리가루를 녹여 800도 가마에 구워내는 전통 공예다. 강 작가는 여러 칠보성물을 만들다가, 가장 이끌렸던 칠보묵주를 중심으로 2020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강 작가는 주문 제작 묵주를 만든다. 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묵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기도다. “제작 전에 묵주의 주인이 될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만 떠올리며 매듭을 엮어요. 그분께 필요한 은총을 하느님께 청하기도 하고요.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제게 작업 영감을 주시는 것 같아요. 결과물은 하나지만, 묵주 주인과 저 그리고 하느님 셋이 함께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주문 제작 묵주 외에도 다양한 묵주를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다. 강 작가는 묵주마다 고유한 의미를 담기 때문에 같은 모양으로 여러 개 만들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만큼 더 열심히 발품을 팔기도 한다. “모든 묵주에는 주인이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구슬 하나도 허투루 고를 수가 없더라고요.” 다만 강 작가가 만드는 칠보묵주에는 늘 칠보꽃이 달려있다. 기도 안에서 성모님께 바칠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강 작가는 묵주기도와 관련된 교황 문헌과 교회 서적도 자주 접한다. 요즘은 「빙엔의 힐데가르트가 전하는 보석치료」에 나오는 원석 효과를 참고해서 묵주를 만들기도 한다. 묵주는 묵주기도의 도구로 쓰이는 것이지만, 기도하는 이에게 좋은 에너지도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성모님 전구와 그에 응답해 주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체험해 온 강 작가는 묵주기도의 은총을 더 많은 이가 느끼길 바란다. “아름다운 묵주를 만들어서 많은 분을 묵주기도로 초대하고 싶어요. 물론 초대하시는 분은 성모님이시죠. 제 묵주는 예쁜 초대장이 되면 좋겠어요. 하느님의 도구로서 열심히 초대장을 만들겠습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