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별기고] 이주민 의료복지에 관심을

정민철 목사 (위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대구경북지회 지회장)
입력일 2022-10-04 수정일 2022-10-04 발행일 2022-10-09 제 3313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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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낙인에 의료 불평등까지… 생명존중 차원에서 배려해야
생계에 허덕이는 사회적 약자… 의료 혜택 사각지대 놓여 고통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국제의료관광코드’, 이주민 건강권 해쳐
인도주의뿐만 아니라 신앙적 측면에서 인식과 제도 개선 절실 

헌법은 누구나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미등록 이주민 이야기다. 힘든 여건으로 인해 등록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그들 또한 우리의 형제자매다. 이주민 건강권 실현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정민철 목사(위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로부터 이주민 의료복지의 현실과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들어본다.

대구 이주민지원센터 ‘동행’이 9월 25일 추호식 내과의원에서 이주민을 위해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정민철 목사 제공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평등’이란 가치에 민감히 반응했다. 그때부터 ‘평등’을 훼손시키는 인간관계와 제도종교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삐딱이’가 되어갔다. 태어나면서부터 믿게 된 제도종교의 신은 멀어져가고, 근대 철학자들이 신 존재의 근거라 추정하는 ‘자연법’(옳고 그름을 본능적으로 분별하는 인간 본성의 법칙)만이 나를 종교인으로 붙들어 주는 유일한 끈이 되었다.

사람은 각자 다른 개성과 성향을 지녔지만, 모든 물체가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듯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알고 지배받아야 하는 ‘옳고, 그름’에 대한 자연법칙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인간은 자기 생각과 행동을 분리시키고 자신을 배반하는 특이한 생물종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몸’에 관한 ‘평등’ 문제라면 민감해야 하지 않을까? ‘의료 불평등’은 인간의 몸을 차별하는 문제이기에 조금 더 민감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몸과 함께 태어나 몸과 함께 울고 웃는다. 그러므로 몸은 인간 그 자체이며 그 인간에게 하나님(하느님)의 모상이 담겨 있다고까지 고백하지 않는가?

악마는 뒤처진 자부터 잡는다고, 자본주의라는 정글 속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서 있는, 유독 쉽게 아프고 먼저 사라지는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 있다. 바로 ‘미등록 이주민’들이다. 미등록 이주민들은 한국인들이 꺼려하는 농어업과 산업 현장의 가장 밑바닥에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계를 짊어지고 절박하게 일을 한다. 강제추방의 긴장과 두려움은 그들의 처진 어깨를 더욱 짓누른다. 우리의 법제도가 그들을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사실은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필요에 의해서, 상대적 저임금이라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자국에서 교육받은 건장한 젊은 청년들을 우리가 값싸게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미등록 이주민’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들을 향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한’ 처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의료 불평등’이 크게 다가왔다. 7년 전이었던가? 한 미등록 이주민을 돕는 활동가로부터 베트남 여성의 치료비 문제로 상담요청을 받았다. 그녀는 고열을 동반한 탈수증세로 지역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고 몇 가지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소견이 없었다. 3일 정도 지나 몸이 회복되면서 퇴원했다.

문제는 상상을 초월한 병원비였다. 수술을 한 것도 아니고 고가의 약물을 투여한 것도 아닌데 800만 원이 넘는 청구서가 나온 것이다. 원무과에 찾아가 병원비 정산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냐고 물었다. 비보험 환자니 당연히 일반 의료수가 100%라고 생각했는데 확인해 보니 250%가량 되었다. 무슨 근거로 250%로 산정되었냐고 물으니 ‘국제의료관광코드’로 잡혀서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무리 미등록이고, ‘불법’이라지만 어떻게 우리나라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요금체계를 매길 수 있나? 미등록 이주민 활동가들이 병원비 때문에 맘 졸이고 애써 모금한 기금이 그렇게 쓰였단 말인가? 분하고 허탈했다.

작년 12월 가톨릭신문사 ‘사랑 나눌수록 커집니다’에 소개된 암환자 응우옌 반 두엔씨 경우를 보자.(2021년 12월 25일자 4면 보도) 응우옌씨는 5000만 원이 넘게 나온 암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중단할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 대구대교구 신평본당 주임이신 성용규 신부님이 가톨릭신문사에 연결시켜 주셔서 총 7000만 원이 넘는 치료비가 모금되었다. 성금을 전달받은 응우옌씨가 적기에 치료를 받아 암이 완쾌되었다는 기쁜 소식까지 본지에 소개되었다. 모두를 감동케 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하지만 모든 미등록 이주민 환자에게 이런 감동스런 드라마가 펼쳐지진 않는다. 고액의 국제수가 병원비에 치료를 중단하고 하늘의 운명에 생명을 맡기는 미등록 이주민 케이스는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리고 응우옌씨 치료비 5000만 원은 한국인이라면 1000만 원, 보험이 없는 일반수가라면 많아도 3000만 원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국제의료관광코드’는 의료서비스 이용을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에게 적용하도록 되어 있는 국제수가를 말한다. 우리의 경우 대개 중국이나 러시아의 부유층이 한국 의료기관을 이용할 때 적용된다. 개별병원 자율에 따라 책정되는데 대개 건강보험의 3~5배, 일반수가의 1.5~2배에 달한다. 국제 의료 관광 유치는 의료강국이라 자부하는 우리나라의 ‘신성장 동력’ 산업 중 하나다. 한국관광공사가 주도하는 경제를 위한 새로운 먹거리라고도 한다.

하지만 ‘국제의료관광코드’를 미등록 이주민에게 적용하는 순간 우리의 먹거리를 위해 그들을 ‘먹잇감’으로 삼는 셈이 된다.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실시된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용역에선 ‘국제의료관광코드’ 적용이 미등록 이주민의 건강권을 저해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로 지목됐고, 병원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국제의료관광코드’를 적용하는 것을 제한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됐다. 지역 대학병원은 간혹 사정 감안해서 몇십 프로 할인해 주면서 생색내기도 하는데, 그건 국제코드 가격조건에서 깎아 준 것이니 그리 고마워할 일도 아니다.

필자가 믿고 있는 종교 경전에서 ‘평등’은 원래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원래의 질서로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평등이라는 것이다. 지금 대학병원들이 미등록 이주민에게 부과하는 의료수가는 비정상적인 자리에 놓여있다. 미등록 이주민에게 부과하는 국제의료관광코드 적용 반대는 시혜적이고 인도주의적 차원의 고려가 아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병원 내 복지·사회사업부를 통해 연결된 미등록 이주민에게는 일반수가 100% 또는 그 이하로 혜택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분명 칭찬할 일이다. 하지만 불공정한 의료수가 구조에서 베푼 선택적 시혜이니 많이 아쉽다. 원무과에서 미등록이주민 코드를 만들어 수가구조 자체를 정상적으로 만들면 어떻겠는가?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서울성모병원이 이주민들에게 일반수가 100%를 적용해 주었듯이 가톨릭계, 개신교계 병원들도 동참해 주길 호소한다.

고등종교에게 요구되는 영성은 생명존중 감수성에서 표현된다고 믿는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해보면(마태 25장 ‘양과 염소 비유’) 그 사회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에서 생명존중 수준이 결정된다고 본다. 미등록 이주민들 상당수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적 측면에서 신자들이 이러한 연약한 생명에 민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러한 생명존중 감수성이 전파될수록 종교가 건강해질 것이다.

정민철 목사 (위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대구경북지회 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