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몸과 마음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여서였을까요? 그로부터 일 년도 채 안 된 늦가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이기 때문에, 미사는 새벽에 한 번 밖에 없었습니다. 집안 식구가 다 미사에 다녀와서, 그때부터 어머님이 짓기 시작하시는 아침밥을 먹고 학교나 일터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지요. 그날도 미사에 다녀와서 기온이 아직도 쌀쌀했기 때문에 아랫목 따뜻한 자리에서 빈둥거리며 밥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구석에 「준주성범」이라는 책 한 권이 굴러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무료하던 김에 무심코 그 책을 집어 들고 읽었지요. 그런데 몇 쪽도 읽기 전에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인생의 허무함, 영원한 가치, 죽음 후에 나뉘는 운명 등등이 아주 박진감 있게 펼쳐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부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출세 아니라 천하에 없는 일을 이룬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선 학교에 가는 것처럼 책보를 싸 가지고 부엌에서 일하고 계신 어머님께는 머리를 까딱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가을걷이가 끝난 후라 집 뒤쪽에 잔뜩 쌓인 지푸라기 더미의 한 곳을 후비고 들어가 온종일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그때의 심경으로는 인생살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대강 감을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친구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쯤, 책 보따리를 챙겨 들고 학교에 잘 다녀왔다는 듯이, 여전히 부엌에서 일하고 계시는 어머님께 머리를 까딱하며 인사를 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어머님께선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 너 어디 있었는지 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동네 우물을 오가시며 엉성한 울타리 틈으로 저를 보시고도 모른 체하셨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갔다가 밤중에 돌아올 때면 친구의 어머님들은 동구 밖까지 마중 나와 자녀들을 치마폭에 감싸듯 해서 데리고 가시는데, 저의 어머님께선 저녁밥을 준비해 놓고 바느질을 하며 기다리시다가, 제가 돌아오면 반갑게 맞이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왜 안 나갔는지 아니?” 알 턱이 없어 그냥 서있는 제게 그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믿으니까.”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저는 당장 키가 한 자나 크는 것 같았죠…. 학교 간다면서 짚더미 속에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읽고 있는 저를 보시고도, ‘저 애가 저러고 있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하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도, 저라면 당장 가서 혼을 내거나, 아니면 적어도 읽고 있는 책이 무엇이냐고는 물었을 법 한데, 이도 저도 아니고, 어머님은 그날 저를 끝까지 내버려 두셨던 것입니다.
그날의 그 장면은 지금도 어제같이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있습니다. 그렇게, 어머님은 지금까지 그 특유의 미소와 함께 제 사제생활을 동반해 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