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성모님의 손(3)

한경옥(마르가리타) 시인
입력일 2022-09-05 수정일 2022-09-06 발행일 2022-09-11 제 331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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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전날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 길이 매우 미끄러운 주말 저녁, 성당 앞에서 연세가 많으신 우리 반의 할머니를 만났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가 금방이라도 넘어지실 것처럼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고 할머니를 태워드렸다.

모시고 오면서 낙상하시면 어쩌려고 이런 날 나오셨냐고 타박하는 듯한 말을 했다. 할머니께서는 민망하신 듯 “늙으니까 행동이 굼떠 사람이 적은 새벽미사에 다니는데, 내일 새벽에는 길이 더 미끄러울 것 같아 특전미사에 왔다”면서 “안 그래도 가족들이 못 가게 하는데 주일미사에 빠지면 마음이 편치 않아서…”라며 말끝을 흐리신다.

어느 날 나는 반모임에서 그분의 아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연인 즉, “젊은 시절부터 과자공장을 운영하다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런데 IMF 직전에 부도를 내고 말았다. 공장이랑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집기에도 빨강딱지가 붙었다. 그 충격으로 영감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집안에 장례 치를 돈이 없더라. 넋 놓고 앉아 있는데 소식을 들은 한 교우가 현금 200만 원을 가져와서 빈소를 차려줬다. 또한 구역의 교우들과 성당 연령회에서 모든 절차를 능숙하게 진행해 준 덕분에 장례식장이 초라하지 않았고 천주교 공원묘지에도 모실 수 있었다. 만약 천주교를 믿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냐”라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할머니께서 성치 않은 몸으로 비탈진 골목길을 기다시피 내려오셔서 마을버스를 타도, 내리는 정류장에서 성당까지는 제법 먼 거리다. 게다가 관절염 때문에 편치 않은 걸음으로 왕복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한 번에 건너시는 건 무리다. 하물며 길이 미끄러우니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주일미사에 참례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는 할머니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작은 핑계거리만 있어도 미사에 빠졌던 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부끄러운 마음에 그만 “할머니! 겨울동안 제가 주일마다 새벽미사에 모시고 다닐까요?”하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그건 아니지, 나 같은 늙은이 때문에 젊은이가 그렇게 애를 쓰면 되나” 하시면서도 얼굴이 환해지신다. 아뿔싸! 아침잠이 많아 새벽미사에 단 한 번도 참례해본 적이 없는 내가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한 걸까. 금세 내 입을 쥐어박고 싶을 만큼 후회스러웠지만 이미 약속을 해버렸으니 어쩌랴.

그 후, 나는 주일마다 할머니를 모시고 새벽미사에 다녔다. 혹시라도 늦게 가면 대문 밖에서 기다리시다 병환을 얻게 될까봐 머리맡에 알람시계를 두 개씩 놓고 잤다. 그리하여 나도 한동안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는 성실한 신자가 될 수 있었다. 그때의 그 뿌듯함이란….

이듬해 봄, 우리 가족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동안 할머니랑 정이 담뿍 든 나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망설이다 사정을 말씀드리니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으시고 “자매님의 고마움을 잊지 않을게요. 아마도 내가 가엾어 성모님께서 자매님을 내게 보내주신 것 같아요” 하시며 눈물까지 글썽이시는 게 아닌가.

아! 나는 게으른 내게 성모님께서 그분을 보내주셨다고 생각했는데 성모님께서는 오히려 그분을 위해 미흡한 나를 당신 손으로 사용하셨다는 말인가.

한경옥(마르가리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