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체르니 추기경, 아우슈비츠서 가족의 홀로코스트 경험 고백

입력일 2022-08-16 수정일 2022-08-17 발행일 2022-08-21 제 3307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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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현장에서 미사 주례하며
유다인 외할머니와 부모 사연 공개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이 8월 9일 아우슈비츠 수용소 파시즘 피해자 기념비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CNS

【외신종합】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이 지난 8월 9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해 십자가의 성녀 데레사 베네딕타 순교 80주기 미사를 주례했다. 성녀 에디트 슈타인으로도 잘 알려진 데레사 베네딕타는 유다인으로, 가톨릭으로 개종해 가르멜수녀회에 입회했고, 1942년 8월 9일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서 순교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7년 그녀가 순교했다고 선언했고 1998년 시성했다.

이날 미사 강론에서 체르니 추기경은 개인적 경험을 털어놔 참례자들을 놀라게 했다. 체르니 추기경은 “에디트 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유다인의 피가 흐른다”면서 “나의 외할머니인 안나 뢰프(1893~1945)는 유다인의 자녀로 가톨릭신자로 자랐으며 에디트 슈타인과 거의 비슷한 나이이고 같은 최후를 맞이했다”고 밝혔다.

체르니 추기경의 외할머니인 안나 뢰프는 1944년 10월 22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다. 하지만 소련군이 폴란드를 장악하자 나치는 안나를 포함한 많은 수용자들을 독일의 노이슈타트-글리베 수용소로 이동시켰다. 1945년 1월 안나는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당시 장티푸스에 걸려 고향인 체코 브르노에 가지 못했고 1945년 5월 21일 선종했다.

체르니 추기경의 부모도 나치로부터 탄압을 받았다. 그의 외조부모는 가톨릭신자였지만 유다인으로 취급받았고, 따라서 어머니 위니프레드 체르니도 나치에게는 유다인이었다. 체코 브르노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위니프레드는 프라하 인근 테레친 수용소로 이감됐고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수감됐다. 아버지 에곤 체르니는 유다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용소에 끌려가진 않았지만 이혼을 거부해 테레친 인근의 한 수용소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전쟁이 끝난 뒤 부부는 다시 만나 1946년 브르노에서 체르니 추기경을 낳았다. 하지만 1948년 체코가 공산화되자 부모는 캐나다로 이민을 했다. 부모는 난민으로 인정되기까지 캐나다에서 정착하기 위해 힘든 삶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