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에세이] 삶의 소중함 / 신현욱

신현욱 비오,제2대리구 대학동본당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13년 전 어느 가을날, 한 사람이 의식을 잃고 몸에 힘이 빠져 축 늘어졌습니다. 출근하여 그를 발견한 동료들은 놀라서 급히 그를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뇌출혈이었습니다. 얼마나 진행되었을지 모르는 머릿속 출혈은 그를 마비시키고 급히 뇌수술이 필요했으나 가족은 곁에 없었습니다. 의학적으로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웠던 그는 가족이 온 후 늦게 수술을 받고 보름 뒤 깨어납니다. 허기짐을 느끼고 음식을 먹고 조금씩 생기를 되찾았지만, 이미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있습니다. 팔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가고 싶은 곳에도 홀로 가기 힘들고 하던 일도 그만둬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 갈망하는 것, 희망하는 것 모두가 불가능같이 느껴지는 절망 속에 있게 됐습니다. 얼마간의 재활 기간을 거친 후 더 이상 회복은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가장 편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그의 가족들도 그를 떠났기 때문이지요. 돈보다 먼저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이 사람이다 하더이다. 그래도 그는 더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팡이에 의지하게 됐지만 움직일 수 있고, 그의 기억은 멀쩡하기 때문입니다. 불편하지만 한쪽 팔로도 그가 하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이 글을 씁니다. 한때 절망했지만 갈망하였고 다 잃어버린 것 같았지만 많은 것을 되찾았고 죽을 것 같다던 그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그가 수술받는 동안 수술방 앞에는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고,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게 빛이 비추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왜 그러셨는지?” 그는 생각하며 감사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다시 맞닥뜨리게 될 죽음 앞에 겸손합니다. 평안한 죽음의 축복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재활을 위해 입원했던 개신교 카리스마의 재활병원 교목이 어느 날 지나가는 말로 “형제님을 살리신 데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여전히 온전한 죽음의 준비가 안 된 채로 그 자리에 서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기억할 수 있고 의지로 잘 준비하면서 사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온전히 준비되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저희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그분께 경외를 드리며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맡겨드릴 때 죽음의 자리에 선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사랑으로 품어주실 겁니다.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형제자매님들, 서로 위하고 사랑하지 않는 곳에는 평안함이라고는 없습니다. 코로나19로 두려웠고,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졌더라도 이겨내고 희망해야 할 빛은 소중한 여러분들의 생명입니다. 자기 삶을 더욱 소중히 여기시면서 주님의 행복 속에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사랑이 제일 힘들더이다. 제 살을 덜어내는 아픔 중에서 기뻐하시며 애덕의 공로를 잘 쌓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신현욱 비오,제2대리구 대학동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