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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공포의 수단 단추 세기 / 정연진 베드로 신부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
입력일 2022-07-26 수정일 2022-07-26 발행일 2022-07-31 제 330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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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단골 주제 하나가 있다. 그것은 사제들이 입는 수단이다. 하얀 로만 칼라의 재질(?)을 자기가 직접 체크해보겠다며 달려들기도 하고, 착용하는 모습을 시연해달라는 요청 또한 쇄도한다. 그런데 아주 의외로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건 로만 칼라가 아닌 수단에 달린 단추였다. 어깨부터 발목까지 촘촘하게 단추들이 달려 있어 로만 칼라의 호기심을 해소한 아이들에게 소소한 타깃이 되곤 했다.

“이거 단추 진짜 풀리는 거예요?”, “단추는 가짜고, 뒤에 지퍼가 달린 거 아니에요?” 멀쩡히 제 기능을 다 하고 있는 단추가 억울한 소리를 듣는 날엔 내가 대신 단추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단추 몇 개를 풀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 “와! 진짜 단추네?”하고 금세 의심을 거두었다. 단추의 누명을 벗겨주었다는 뿌듯함에 필살기로 단추 10개 가량을 순식간에 풀었다가 채우는 묘기를 보여주면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끝까지 호기심을 해소해주지 못한 어린이가 한 명 있었다. 이 친구는 내 수단 단추의 개수를 궁금해하던 아이였다. “신부님, 수단에는 단추가 총 몇 개 달려있어요?”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응~ 그건 신부님들의 키에 따라 달라. 나 같은 경우는 23개인가 24개인가 달려있을 거야.” 그러자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요? 그럼 신부님, 제가 직접 세어봐도 돼요?” 해맑은 아이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이가 단추를 잘 세어볼 수 있도록 차렷 자세를 했다. “하나, 둘, 셋, 넷…” 차분히 단추를 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단순히 입으로만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꾹 눌러가며 세는 것이 아닌가!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차 싶었다. 뒤늦게야 깨달았던 것이다. ‘아니 잠깐! 이대로 계속 세다보면…? 나의…, 헉! 아!! 안 돼!!!’ 점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차렷 상태에서 자세를 고쳐 얼른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러자 그 어린이는 “아니 신부님!! 손 때문에 단추를 셀 수가 없잖아요!!”라며 내 손을 치우려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다시 손을 모았다. 막으려는 자와 치우려는 자의 치열한 실랑이가 벌어진 끝에 나는 소리쳤다. “아이참!! 23개인가 24개인가 그렇대도!!?”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발걸음을 뒤로 해야 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을 찾아와서 수단 단추 개수를 세어보려 했다. 하지만 나의 격렬한 저항으로 인해 항상 8번째 단추에서 번번이 무산됐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어린이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는지 내가 단추를 세지 못하게 하면 마치 아깝게 실패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돌아섰다. 이렇게 친구 하나가 더 생긴 것이다. 어린이들이 나를 보면 장난기가 발동한다는 건 어찌 보면 좋은 일이다. 사목의 출발은 ‘관계 형성’이라고 했다. 신앙이 스며드는 건 이것이 이루어진 후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포의(?) 단추 세기는 무서웠지만, 그래서인지 늘 반가웠다.

정연진 베드로 신부,홍보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