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바다를 가다 성지를 가다] 동해, 춘천교구 양양성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2-07-05 수정일 2022-07-06 발행일 2022-07-10 제 3302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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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엔 시원한 바다로… 신앙에도 ‘풍덩’ 빠져볼까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 찾는 피서지
피란 마다하고 양들 돌보다 순교한
이광재 신부의 사랑 배울 수 있는 곳

강원도 양양의 바다.

시원한 바닷물과 바닷바람, 듣기만 해도 기분이 청량해지는 파도소리까지. 바다는 그 분위기만으로도 여름의 열기를 식혀주는 장소다. 바다를 찾아 ‘피서’를 가는 것도 좋지만, 거기에 일상을 떠나 하느님을 찾는 ‘피정’도 곁들여 보면 어떨까.

여름 휴가철을 맞아 동해, 서해, 남해에서 바다를 찾으며 순례도 함께할 수 있는 성지들을 소개한다.

이광재 신부의 사랑이 담긴 성지, 양양

강원도 양양은 해마다 많은 피서객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신자에게 이 양양 앞바다는 한 가지 의미가 더 있다. 바로 하느님의 종 이광재(티모테오) 신부의 목숨을 건 사랑이다.

우리나라가 38선을 기점으로 갈라지고, 북한에서 공산당이 집권하게 되자 사제와 수도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까지 공산당의 핍박을 받게 됐다. 당시 이 신부는 이북 본당 중 38선에 맞닿은 춘천교구 양양본당을 사목하고 있었다. 이 신부는 자신 역시도 공산당에게 위협을 당하면서도 양양본당 신자들과 함께 38선 이남으로 탈출하려는 이들을 도왔다. 양양의 바다는 바로 그 탈출로 중 하나다.

이 신부가 신자들을 월남시키던 길은 양양성당에서 양양 현북면 명지리에 이르는 ‘티모테오 길’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티모테오 길’은 오늘날 18㎞에 이르는 순례길로 조성돼, 신자들의 순례 외에도 트레킹 혹은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탈출로는 현재 ‘티모테오 길’로 조성된 길을 포함해 모두 4개가 있었다. 이 중 하나가 양양 앞바다를 이용한 해로였다. 이 신부와 신자들은 양양 앞바다에 조각배를 숨겨놓고 사제, 수도자들을 태워 주문진이나 강릉까지 보냈다.

이 신부는 “나보다 훌륭한 성직자, 수도자들이 하나라도 더 월남해 남한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힘껏 드러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38선을 넘어가려는 많은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을 일일이 안전하게 숨겨 주고 편의를 봐주며 무사히 월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광재 신부상.

6·25전쟁 순교자를 기리는 성지

이 신부의 자취를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군청길 17에 자리한 춘천교구 양양성지다. 바로 양양본당의 성당이다.

양양성지 입구 성당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 이 신부의 순교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칩니다’는 순교비의 문구는 이 신부의 생애를 가장 잘 표현하는 문장이다.

신자들은 1939년 양양본당 제3대 주임신부로 부임한 이 신부를 ‘성인 사제’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이 신부는 사제를 기다리는 신자를 찾아 늘 걸어서 공소를 순방했다. 특히 이 신부는 병자와 가난한 이를 각별하게 돌봤다.

이 신부는 공산당의 박해가 심해지자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남쪽으로 피신시키면서, 자신은 목자를 잃은 양떼를 위해 오히려 이북을 순방하며 성사를 집전했다. 신자들이 이 신부에게 월남을 권했지만, 이 신부는 “북한에 있는 신자 한 사람이라도 빠짐없이 앞장서면 나는 그를 몰고 뒤따르겠다”며 “목자는 양을 버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 신부는 결국 공산군에 체포됐고, 원산 방공호에서 수많은 포로와 함께 살해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신부는 죽는 순간까지도 죽어가는 다른 사람들의 신음 소리에 답하며 “내가 가서 구해주지. 내가 가지요”라고 중얼거렸다고 힌다.

성지에는 이 신부의 순교비 외에도 하느님의 종 유재옥(프란치스코) 신부·김교명(베네딕토) 신부의 순교비도 자리해 함께 기억하고 기도할 수 있다. 양양본당 제2대 주임인 유 신부와 양양본당 출신 첫 사제인 김 신부 역시 6·25전쟁 중 순교했다.

■ 성지 주변 가볼 만한 곳

양양 앞바다는 동해안에서도 비교적 수심이 낮고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이다. 성지에서 5㎞거리에 낙산해수욕장, 송전해수욕장이 있고, 양양군에는 정암·설악·해조대·인구·갯마을·지경리 해수욕장 등 20여 곳의 해수욕장이 자리하는 등 해수욕, 해변 산책, 수상 스포츠를 즐길 만한 장소가 많다. 최근에는 파도를 타는 서퍼들이 많이 모여들어 ‘서핑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또한 양양에는 설악산 자락이 뻗어있어 설악산 대청봉, 오색약수터 등 바다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명산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산리선사유적지와 낙산사 등도 찾아볼 만하다.

양양성지 성당 외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