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폼나는 기도의 비밀 / 임선혜

임선혜 아녜스 소프라노
입력일 2022-07-05 수정일 2022-07-05 발행일 2022-07-10 제 330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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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혜씨는 다섯 가지 언어로 기도를 한다면서요?”

잠깐 시범(?)을 보였더니 모두 혀를 내두릅니다. 잘못 들으면 마치 제가 5개 국어에 유창한 듯 보입니다. 아, 정말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저 질문은 그만 팩트의 본질을 흐리고 말았습니다. 아, 물론 주요 기도문을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우리말로 외우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몇 개 국어로 외우느냐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하느냐 입니다.

10여 년 전 겨울, 저는 슬로바키아의 한 변두리 집시촌에 위치한 어느 수도원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당연히 피정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엄숙해질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지요. 그런데 수녀님들은 제게, 그동안 얼마나 바쁘고 애를 썼냐며 편안하게 일주일 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가장 따뜻한 방을 내어 주시며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배고프면 부엌으로 나오라고요. 아침 기도에도, 미사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연 설명을 하시는데, 설마 농담이실까, 정말 그래도 될까, 한동안 큰 눈만 끔뻑였습니다.

실제로 다음 날 아무도 절 깨우지 않았고,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니 수녀님 한 분이 아침을 주셨습니다. 다른 수녀님들은 하루 일과 중 하나라는 ‘외국어 일대일 수업’을 하고 계셨어요. 설립자가 오스트리아 신부님이셔서 그 나라 출신들이 많았지만, 그밖에도 슬로바키아, 프랑스, 아일랜드 등에서 온 수도자들이 함께 사는 집이니. 네이티브 스피커에게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최고의 ‘언어-품앗이’였습니다. 다양한 외국어로 노래하는 직업이 성악가라, 늘 외국어 수업이 고픈 제게 얼마나 부러운 환경이었던지요!

수녀님들을 따라 사제복, 수도복을 짓는 공방과 성모상, 예수상 등을 조각하는 작업실에 구경도 가고 눈 덮인 숲속 산보도 다녀왔습니다. 이제 다락방 성당에서 묵주기도를 바친다고 하시더군요. 그냥 놀기만 하는 게 양심에 찔려서 함께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위층에서 종종 천상의 음악처럼 들려오는 수녀님들의 노랫소리를 가깝게 듣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다락방의 묵주 기도는 충격이었습니다. 어쩜 수도원인데 묵주기도를 겨우 한 단이나 두 단만 바치고 끝내는 거죠? 20단까지는 아녀도 5단은 충분히 각오를 했는데 말이죠!

그리고 신선했습니다! 선창은 앉은 순서대로 한 명씩 돌아가며 했는데, 모두 각기 다른 언어로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언어로 답하고요. 누가 ‘은총이 가득하신~’을 영어로 시작했다면 모두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을 영어로 받아 외우는 것이죠.

10분도 채 안 걸리는 그 기도 시간이 매일 그렇게 부담 없이(?) 설렐 수가 없었습니다. 한두 단만 바치니 안 그래도 한 번 한 번의 성모송이 소중해지는데, 언어를 바꾸어 가며 말하니 그 의미가 또 마음에 다시금 와 닿고 새롭게 새겨지는 듯 했으니까요.

그 후로 혼자 묵주기도를 할 때도 한 단 한 단, 다른 언어로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습관처럼 외우며 몇 초가 멀다 하고 딴생각으로 빠지던 것이 좀처럼 쉽지 않아졌지요. 다섯 가지 언어로 폼(?)나게 바치는 기도의 연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후 그 수도원에 한국 출신의 수도자, 성직자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말로 선창하면 우리말로 응할까요? 궁금합니다. 조만간 확인하러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임선혜 아녜스 소프라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