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씨 뿌리는 ‘망종'에 만난 유기농법 지킴이 한계수씨

박민규 기자
입력일 2022-06-15 수정일 2022-06-15 발행일 2022-06-19 제 329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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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미여… 땅도 사람도 다 같이 잘 살아야지”

유기농 농사 위해 20여 년 전 귀농
광주 가톨릭농민회 활동 이어오며
수확 적고 고되지만 유기농법 고수

이상 기온으로 낮기온 더 높아지고
일손 부족·가뭄까지 겹쳐 ‘삼중고’ 
농촌 지켜갈 방법 함께 고민해야

한계수씨가 유기농 농사법을 설명하고 있다.

올해 6월 6일은 망종이다.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로 망종 무렵에 모내기를 진행한다. 망종 다음날인 6월 7일 한국가톨릭농민회 광주전남 주잡곡위원장 한계수(아우구스티노·67)씨를 만났다.

기후위기와 농촌 인구 감소 등 여러 어려움에 놓인 농민들. 그중에서도 유기농법으로 친환경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는 한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유기농법으로 땅 일구는 한계수씨

‘오전 10시까지 오세요’라는 말과 함께 남긴 주소, 전남 화순군 청풍면. 서울에서 출발해 5시간 걸려 도착한 그곳에서 만난 한계수씨는 모내기에 한창이었다. 오전 5시에 밭일을 하고 논으로 넘어왔다는 한씨 말에 차마 서울에서부터 왔다는 힘겨움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밭일은 해 없을 때 해야죠. 새벽같이 일어나서 밭으로 가고 해 뜨면 논농사 짓고, 어두워지면 또 밭으로 가고…, 저녁 7~8시 즈음 집에 들어가요.”

피곤할 법도 한데 그나마 전날 비가 조금이라도 내려서 큰 도움이 됐다며 기뻐했다.

“지금이 한 해 농사를 결정하는 시기니까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비가 너무 안 와서 걱정했는데 조금이라도 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본격적으로 모를 심기 전 아들과 함께 식물추출물로 만든 유기농 작물보호물질을 모에 뿌리는 작업을 했다. 이후 한씨가 모를 이앙기에 옮겨 주면 아들이 운전대를 잡고 심어나갔다. 하지만 기자가 봐도 옆의 논과 비교했을 때 한씨 논의 모는 더 듬성듬성 심겨있었다.

그는 “유기농으로 하기 때문에 모를 더 조금 잡고 넓게 심는다”며 “그래서 수확량도 훨씬 적다”고 했다.

“힘들죠. 자연과 땅을 살리기 위해 하는 거지 뭐.”

한씨는 20여 년 전 우연히 유기농법 강의를 들은 후 유기농 농사를 짓기로 결심, 이곳으로 귀농했다.

“처음 3년간은 수확도 못 하고 너무 힘들었어요. 땅을 살리기 위해 미생물 투입하고, 왕겨와 닭똥을 발효시켜 넣는 등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지금도 살리고 있는 중이죠.”

유기농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방제작업도 해야 한다. 할미꽃 뿌리와 고삼, 돼지감자, 은행 열매 우린 물 등 유기농 자재를 우려 직접 만든 방제약을 사용하고 있다.

20여 년째 유기농법을 고수하고 있는 한계수씨가 모내기하기 전, 식물추출물로 만든 유기농 작물보호물질을 모에 뿌리고 있다.

위기의 농민들

“가톨릭농민회가 없었으면 저도 지금 여기 없겠죠.”

한국가톨릭농민회(이하 가농) 광주대교구 연합회 회장도 역임한 한씨는 가농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1966년 창립된 가농은 농민 권익 보호에 앞장섰고, 1990년에는 ‘생명운동, 공동체 운동’으로 전환해 생명 농업 실현과 도농공동체 건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94년에는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이하 우리농)를 창립, 도농 교류를 통해 생명 농업을 지키고 확산시키는 공동체적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농에서 저희 농산물을 구입합니다. 유기농법은 수고에 비해 수확량이 적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은 소비자를 우선시하지만, 우리농은 생산자를 배려하는 것이죠. 그런 배려가 있었기에 깨끗한 먹거리, 생명 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도 농촌의 현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농업은 ‘하느님과의 동업’이라고 말하는 한씨는 “요즘같이 비가 안 오면 하느님의 직무유기”라고 농담 섞은 푸념을 한다.

“가뭄으로 올해 양파나 마늘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관수시설을 잘해 놓은 농민은 그나마 낫지만, 이를 대비하지 못한 농민들은 너무 힘들어하죠.”

행정안전부는 이런 극심한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최근 지방자치단체에 가뭄대책 특별교부세 44억 원을 긴급 지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5월 강수량은 평년의 6% 수준에 불과하고, 197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분명 이상 기온입니다. 기후위기라고 하죠. 병충해가 너무 많아졌고, 없던 벌레와 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보름에 한 번 하던 방제작업을 지금은 열흘에 한 번은 하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는 작물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더 추워졌고 낮에는 더 더워졌습니다. 작물들이 적응 못 하고 아파하고 있는 게 눈에 보입니다. 아미노산을 뿌려주고는 있는데 뾰족한 방법은 없습니다.”

이뿐 아니라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는 문제도 크다. 그는 “아들을 제외하면 내가 이 마을에서 가장 젊다”며 “말 그대로 농촌이 소멸돼 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산업화, 도시화 된 바탕에는 농산물 저가 정책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농민들 희생이 뒷받침된 것이죠. 농촌의 미래를 위해 이제라도 최소한 생활은 할 수 있도록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미여

이처럼 농촌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그것도 20년간 유기농법을 고집하고 있는 한씨. 고단하지만 평안함이 느껴지는 표정에서 그동안 삶의 애환이 그대로 드러났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미여. 공동체 안에서도 일 잘하고 못 하는 사람 있잖아요. 못 한다고 모두 내쫓으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나요. 같이 보듬고 살아야지. 유기농도 마찬가지예요. 잡초도 그 나름대로 역할이 있거든. 땅에서 나온 것은 그대로 땅에 돌려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씨는 초생재배를 한다. 작물을 재배하지 않을 때나 재배지 빈 공간에 풀을 길러 키운 다음, 갈아엎거나 예초기로 잘라 토양에 유기물을 보충해 주는 농법이다. 생산량은 뛰어나지 않지만 그는 지금의 신념을 버릴 생각이 없다.

“작물을 거의 수확 못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가농에서 올해 수확 망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제 신념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땅을 살리고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거든요.”

헤어지기 전, 흐린 날씨 탓에 일하기 수월했겠다고 말하는 기자에게 “작물들은 해를 필요로 한다”고 답한 한씨. 자연 속에서 땅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그에게서 그 누구보다 진한 하느님 향기가 풍겨왔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계수씨.

박민규 기자 pmink@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