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신부를 신부라고 부르지 못하고 / 정호철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
입력일 2022-05-24 수정일 2022-05-24 발행일 2022-05-29 제 329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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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오랜 교포사목 경험이 있는 김 신부님은 매년 봄마다 열리던 성당 골프대회 시타의 기억이 새롭다고 했다. 야구의 시구처럼 골프대회의 개시를 알리는 역할인 시타의 기회가 본당 신부에게 주어졌기에 늘 기다려졌다고 했다.

한국에서 ‘본당의 날’과 같은 체육행사를 미국에서는 골프장에서 자선행사의 일환으로 연다. 신자든 비신자든 모두 함께 참가하는 열린 골프대회는 지역의 축제였고 참가비와 수익금을 모아 이주민 커뮤니티에 희사하는 게 전통이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골프장에 가면 신부가 골프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아서 김 신부는 동반자들에게 자신을 김 부장이라고 부르기를 부탁한 적도 있다고 했다. 골프나 치고 놀기 좋아하는 신부로 오인될까 만든 자구책이었다. 신부를 신부라 부르지 못하는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다.

군에서는 골프장을 체력 단련장이라고 부른다. 위수지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군 장교들은 이 체력 단련장에서 여가를 보내며 임무 수행을 대비한다. 군종 신부 출신인 박 신부님은 예비신자 장교들과 보다 친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골프를 배워야 했다고 전했다. 사목을 위해 골프를 배우는 일은 또 하나의 고역이었지만 그때 배운 골프로 군종 신부 생활 동안 선교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바루의 한 골프 리조트를 여행한 적이 있다. 이곳은 주로 장기 숙박 골프 손님이 주 고객이다. 한국의 겨울이 이곳의 최대 성수기인데 월 300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짧게는 보름 길게는 3개월씩 이 리조트를 애용한다. 부자들의 피한 아닌가? 결코 아니다. 그곳의 하루 체류비용은 한국 골프비용의 3분의 1도 안 된다. 한국에서 은퇴한 노부부들이 따듯한 이곳으로 골프를 겸한 휴양을 위해 방문하는 것이다.

리조트의 한국식당 사장님은 교우셨는데 여기에 오는 손님들 중에 천주교 신자들이 무척 많다고 했다. 주일에 이분들이 미사 참례를 못하니 자기들끼리 공소예절을 한다고도 했다.

때마침 아는 신부님이 한국에서 안식년 중에 계셨고 건강도 챙길 겸 따듯한 이곳으로 오셔서 지내시고 운동도 하시라고 청했다. 리조트에서는 신부님의 숙박과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신부님은 교우들이 성사를 필요로 하는데 마다할 일이 뭐가 있겠냐며 흔쾌히 허락하셨고 나 역시 필요한 역할을 하게 돼 기뻤다. 리조트 측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신부님은 그곳에서 은퇴 후 여러 고민에 빠진 노년 부부들과 만났다. 자식들과의 유산 분배 등으로 힘든 사연, 건강, 신앙문제 등 다양한 신앙상담을 해주셨다.

골프는 운동이다. 축구나 마라톤, 야구와 같은 하나의 운동이다. 신부도 취미나 여가로 골프를 하는 것은 건강유지와 대인관계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과하여 사목에 지장을 주지 않으며 교우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신부님들이 골프를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모든 신부가 골프를 쳐야한다는 건 아니다. 개별적인 호불호가 있으니 선택은 자유다.

‘미운털 박힌 귀족 스포츠’라 일컫는 골프지만 한국의 골프 인구는 500만 명을 넘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인 만큼 골프가 건강을 도모하고 대인관계를 원만히 하는 데 보탬이 된다면 비판만 할 사안은 아니다.

‘신부님 굿 샷!’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김 부장 굿 샷!’ 말고.

정호철 대건 안드레아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상임대표